COMMUNITY

하이브가족상담센터

자료실

게시글 검색
가슴 뛰게 놀아본 아이는 우울하지 않다
하이브가족상담센터 조회수:527
2021-10-21 15:02:22

놀 줄 아는 아이가 건강하게 잘 큰다

 

필자가 초등학교 때만 해도, 골목이나 놀이터에서 노는 아이들의 모습을 쉽게 볼 수 있었다. 이른바 골목 문화가 있었다. 그런데 요즘은 아이들이 노는 골목이란 개념자체가 거의 사라진 것 같다. 놀이터를 가 봐도 노는 아이들을 거의 볼 수 없다. 요즘 아이들은 학교 아니면 학원을 다닌다. 우리나라 아이들이 공부시간은 길고 노는 시간은 적다는 것이 이미 세계적인 화제가 된 적이 있다.

전문가들은 이렇게 놀 수 있는 공간과 시간이 절대적으로 사라지면서 한국의 많은 아이가 ‘놀이 불능’ 상태에 빠질 수 있다고 경고한다. 중앙대 사회복지학과 최영 교수는 “놀이의 기본은 ‘자율성’인데, 아이들이 스스로 놀아보지도 않고 주어진 일과만 수행한다면 결국 무언가를 계획하고 실행하는 주체성을 잃게 될 것”이라고 지적했다.

아이들 중에는 공부 압박이 낳은 ‘휴식 포비아’를 겪으면서 스스로 ‘놀기’를 거부하는 경우도 있다. “공부하지 말고 놀아도 된다.”고 부모가 말해도 민수는 책을 놓지 못한다. 그렇다고 책을 집중해서 읽는 것도 아니다. 가족이 같이 놀러 갔을 때도 “공부를 해야 한다”며 울음을 터뜨리기도 한다. 이렇게 민수처럼 놀이 불능에 빠진 아이들은 우울증이나 불안 ADHD, 틱 같은 증상을 보이기도 한다.

이러한 증상을 보이는 아이들은 어떻게 도와줘야 할까? 이런 아이들에게 도움이 되는 좋은 약이 있을까?

소아정신과에서 처방해주는 약이나 한의원에서 조제해 주는 약도 좋겠지만, 가장 좋은 약은 아이들의 가슴을 뛰게 만드는 놀이 경험이다. 놀이는 하고 싶은 것을 하는 것이다. 아이의 뇌에 번쩍번쩍 불을 켜주는 데에 놀이만큼 뛰어난 것은 없다. 삼차원적인 놀이는 아이의 소뇌를 활성화시키고 전두엽에 많은 자극을 줘서 기억력 증진을 돕는다. 그러니까 신나게 놀아본 아이는 우울할 겨를이 없다.

필자가 가진 가장 큰 재산중 하나는 어린 시절에 재미있게 놀았던 기억이다. 7살 때 삼촌과 수퍼맨 영화를 보고 와서는 보자기를 두르고 지붕에서 뛰어내려 부러진 다리에 깁스를 한 것. 동네 아이들을 데리고 산에 갔다가 아이들이 없어졌다며 동네가 발칵 뒤집어진 것, 친구들과 여기저기 걸어서 돌아다니던 것. 동생을 자전거 뒤에 태우고 얘기를 나누며 동네를 돌던 일. 톰 소여의 모험을 읽고 옥상에 있는 물탱크를 개조해서 강에 띄우려다가 부모님에게 발각당해서 혼났던 일 등. 이러한 기억은 성인이 된 필자에게 추억이 되어서 그것을 떠올릴 때마다 즐거운 마음을 갖게 해준다.

어린 쥐들은 자라면서 본능적으로 놀이에 빠진다. 이런 어린 쥐들을 대상으로 놀이에 관한 실험을 했다. 실험 대상 쥐들에게 노는 것을 금지하고 다른 쥐들에게는 허용해 주었다. 그렇게 한 뒤, 양쪽 그룹의 쥐들에게 고양이 냄새가 배어있는 굴레를 채워 주니까 본능적으로 두 그룹의 쥐들은 모두 쥐 굴속으로 도망가서 숨었다. 고양이한테 잡혀서 죽기 싫은 본능 때문이다. 그 뒤에는 어떻게 될까?

두 그룹의 쥐들은 도망가 들어간 굴에서 모두 한동안 몸을 숨기고 나오지 않았다. 그러다가 놀아본 쥐들은 머리를 빼꼼히 내밀고는 고양이가 있는지 살피면서 주변 환경을 천천히 탐색하기 시작한다. 고양이가 없는 것을 확인하고는 다시 밖으로 나온다. 하지만 못 놀게 한 쥐들은 굴속에서 다시는 나오지 않는다. 그리고는 자기들이 숨은 그 자리에서 죽는다.

쥐들은 인간과 똑같은 신경전달물질을 가졌고 비슷한 대뇌 피질 구조를 가졌기 때문에 이 실험을 통해서 놀이가 우리의 생존과 성장에 얼마나 중요한지를 짐작해볼 수 있다. 쥐나 동물뿐만 아니라 사람도 놀지 못하면, 뇌가 정상적으로 발달하지 못한다. 동물이나 사람에게 놀이 없는 인생은 우울함을 안겨줄 뿐이다.

하지만 놀아본 쥐들은 스트레스 때문에 움츠렸던 상태를 벗어나 다시 원래 상태로 돌아가는 ‘회복탄력성’이 높았다. 마찬가지로, 친구나 가족과 신나게 놀아본 아이들은 살아가면서 스트레스 상황을 만날 때 잠깐은 움츠리고 피하겠지만 다시 원상태로 복귀하려는 회복탄력성이 높다. 이러한 회복탄력성은 ‘자기답고’ 일치성 있게 표현하는 자존감과, 다른 사람과 ‘즐겁게’ 상호작용하는 능력인 사회성의 바탕이 된다.

인간들의 놀라운 특징 중에 하나는 평생에 걸쳐서 놀도록 설계가 되었다는 사실이다. 여기서 잘 논다는 것은 책을 읽고 혼자만의 상상의 나래를 펼치는 놀이도 있고, 친구나 가족과 함께 하는 양질의 시간을 보내는 것이다. 부모의 과업이 자녀를 잘 양육하는 것이라면 아이시절의 과업은 외롭지 않고 즐겁게, 신나게 그리고 재미있게 노는 것이다.

중년의 부모님이 20대 초반의 아들을 데리고 상담에 온 적이 있다. 아들은 채팅하던 사람들에게 자신의 나체 사진을 보내려다가 실수로 부모님의 핸드폰에까지 전송을 했다. 아들의 나체 사진을 받아본 부모님은 놀라고 당황스러운 마음에 아들과 대화를 시도했고 정신과에도 방문했다. 그 결과 아들이 어려서부터 부모에게 애정을 받지 못해서 외로워했고, 사람들과의 관계도 원만치 않아 친구가 없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아들이 유일하게 외부와 소통하는 창구는 SNS에서 자신에게 관심을 주는 다른 남성들과 서로의 음란한 채팅과 자료를 주는 것임을 알게 되었다.

상담에 온 가족에게 필자는 매주 숙제를 내주었다. 주말에 가족이 함께 외식하고, 산책하고, 등산하는 것 등 매우 평범한 것이었다. 부모와 자녀는 숙제를 열심히 했다. 한번은 상담 중간에 부모와 자녀가 함께 보드게임을 하는 시간을 가졌다. 스머프 사다리 게임, 할리갈리, 원숭이 게임, 우노, 알까기 등을 가족이 즐길 수 있도록 필자가 도와주었다.

상담시간이 다 되어서 게임을 마무리 할 무렵 아버지가 한 마디 하셨다. “아이가 태어나고 지금까지 가족이 함께 이런 게임을 처음 해 봅니다.” “처자식 먹여 살리는 책임이 있어서 일 밖에 몰랐어요.” “자식과 가족에게 너무 미안하네요.” 이렇게 말하면서 눈물을 흘렸다. 아버지가 그 말을 하시는데, 아내와 아들도 같이 눈물을 흘렸다.

상담과정에서 아들의 행동이나 말이 많이 밝아졌고, 부모와 아들과 일주일에 3~4번은 한 번에 30분 이상씩 대화를 나누는 수준으로 관계가 개선되면서 몇 달에 걸친 상담을 종료하게 되었다. 마지막 상담에서 그간 상담에 참여한 소감을 물었는데, 가족 모두가 이구동성으로 말한 것이 있다. 상담 과정 중에 가족이 함께 보드게임하며 놀았던 그 한 시간 반이 부모와 자녀가 회복을 경험한 상담의 하이라이트였다는 것이다. 필자는 그 가족의 소감을 들으며 가족이 함께 하는 놀이의 중요성을 절감했다.

필자에게 개인 상담을 의뢰했던 한 대기업 임원이 있었다. 그는 외국 명문대학에서 박사학위를 받고 지금 다니는 회사에 스카웃 된 엘리트였다. 그가 상담에 온 이유는 우울증 때문이었다. 회사에서 사람들과의 관계가 너무 힘들다고 했다. 그는 인생에서 가장 후회되는 것이 자신이 어린 시절에 너무 공부만 한 것이라고 말했다. 왜냐하면 어린 시절부터 좀 더 친구들과 놀았더라면 사람들을 좀 더 잘 이해하고 좀 더 자유롭게 커뮤니케이션할 수 있었을 것이기 때문이다.

그의 부모님은 두 번 결혼하고 이혼하는 동안, 그와 놀아줄 시간이 없었다. 그는 불안정한 어린 시절을 보내면서 공부에 빠졌는데, 자신은 학교에서도 공부만 잘했지 친구 관계는 거의 없었다고 했다. 지금 회사생활에서 친구가 거의 없고, 아내는 자녀들과 더 친하게 지내느라 자신과는 언젠가부터 거리감이 있어서 우울하다고 말했다.

가족과 친구와 잘 지내면 행복하다. 하지만 아무리 돈을 잘 벌고, 명예를 가지고 있어도 가족과 소원하고 친구와 멀어진 사람은 행복하지 않다. 다른 사람과 잘 지내기 위해서 필요한 것은 ‘잘 노는 것’이다. 잘 놀기 위해서는 어떻게 해야 할까?

 

부모가 먼저 잘 쉬어야 아이가 잘 논다

 

부모가 최소한 일주일에 하루는 가족과 함께 시간을 보내며 쉬어야 아이는 부모와 함께 놀 수 있다. 그러기 위해서는 부모가 먼저 잘 쉬는 것의 중요성을 인식해야 한다. 잘 쉰다는 것은 허비되는 시간이 아니라 에너지를 ‘충전’하는 시간이다. 쉬지 않고 늘 팽팽한 긴장감 가운데 사는 것이 오히려 에너지를 시나브로 ‘방전’시키는 것이다.

외경에 따르면 사도 요한은 기르던 참새와 놀기를 좋아했다고 한다. 하루는 사냥꾼이 찾아와 그토록 이름난 사람이 놀고 있는 모습을 보고 깜짝 놀랐다. 그는 그 시간에 틀림없이 무엇인가 유익하고 중요한 일을 할 거라고 생각했던 것이다. 그래서 성인에게 물었다. “어째서 시간을 놀이로 허비하십니까? 왜 그런 쓸모없는 참새와 시간을 보내십니까?”

요한은 놀란 눈으로 사냥꾼을 바라보았다. 놀이를 해서는 안 될 이유가 어디 있는가? 왜 저 사냥꾼은 깨닫지 못하는 걸까? 이윽고 사도 요한이 그에게 물었다. “그대는 어찌해 활줄을 팽팽하게 죄어놓지 않는가?” “활줄을 죄어놓기만 하면 활이 탄력을 잃어버려 화살을 쏠 수 없기 때문에 풀어놓는답니다.”

그러자 사도 요한은 이 젊은 사냥꾼에게 말했다. “벗이여. 그대가 활줄의 팽팽한 압력을 풀어놓듯이 그대 내면에서 일어나는 긴장감도 풀고 쉬어야 한다네. 만일 내가 이렇게 휴식을 취하지 않으면 힘이 없어 어떤 일도 할 수 없을 걸세. 심지어 내가 해야 할 일을 하거나 내게 필요해 주의력을 기울일 힘조차 없다네.” (『느낌 있는 이야기』 45쪽)

자녀와 놀아줄 시간은 마련했지만, 어떻게 놀아주어야 할지 몰라서 부담을 느끼는 부모도 적지 않다. 같이 TV를 볼까, 비디오 게임을 할까, 주말에 놀이동산에 가는 게 좋을까, 그냥 장난감을 사주고 놀게 하는 게 나을까 등등 고민이다. 놀이를 위해서 장난감을 구매하거나 아이를 키즈 카페 혹은 놀이동산에 데려가지 않아도 아이가 가슴 뛰는 행복감을 경험하는 놀이는 얼마든지 할 수 있다.

놀이 전문가들에 따르면, 야외로 데리고 나가는 것만이 놀이가 아니다. 색연필이나 크레파스로 그림그리기, 모래 만지고 물건 올려놓기, 손가락 인형 놀이부터, 비 오는 날 우비랑 장화신고 첨벙첨벙 걷기, 심지어 도서관에 가서 책을 읽어주면서 상상의 나래를 펼지는 것도 아이가 재미를 느낀다면 모두 ‘놀이’다.

집에서, 학교에서 아이가 하는 것들, 관심을 가지는 것들에 대해 반응하고 들어주면 된다. 그리고 아이가 하고 싶어 하는 놀이가 있으면 부모가 함께 참여하고 공감해주는 것만으로도 충분하다. 부모가 먼저 아이에게 놀아달라고 하는 것도 한 방법이다.

 

[남동우 소장의 저서 '부모의 말 한마디 행동 하나가 아이를 바꾼다' 중에서]

SNS 공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