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기의 생존과 애착형성에 접촉만큼 중요한 것도 없다
필자는 2001년부터 2011년까지 10년 동안 미국 LA에서 거주했다. 처음 몇 년은 대학원을 다녔고, 나머지 시간은 아시아계 미국인들을 대상으로 심리상담 서비스를 제공하는 심리상담사로 근무하며 직장생활을 했다. 그 무렵 즐겨보던 프로그램이 있다. 디스커버리 채널에서 방영한 <인간과 자연의 대결>이다.
주인공인 영국군 장교출신의 베어 그릴스가 오지를 찾아가서 생존하는 과정을 보여주는 프로그램이었다. 그는 가벼운 배낭 하나를 메고는 생존에 필요한 도구들과 먹을 것, 잠자리 등을 자연에 있는 지형지물을 이용해서 조달했는데, 그 방법이 기발하면서도 자연스럽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는 오지의 자연을 헤쳐 나가며 거미, 장미풍뎅이 애벌레, 죽은 얼룩말, 자기 소변, 악어, 익힌 스컹크 고기 등을 먹었다. 필자가 중학교 때 흠뻑 빠졌던 <맥가이버>라는 외화 드라마의 ‘오지 판(version)’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만약 우리 중 누군가가 그런 오지에 남겨져 표류해야 한다면 어떨까? 살아남기 위해 무엇이라도 먹고, 무엇이라도 하려고 하지 않을까? 인간의 본능 중에 가장 강한 것이 생존의 본능과 의지이기 때문이다.
갓 태어난 아기는 세상이라는 오지에 도착한 ‘베어 그릴스’같다. 아기는 생존 본능과 의지로 가득하다. 조금만 불편하거나 배가고프면 운다. 조금도 지체하지 않는다. 배가 고플 때 젖병을 물려주면 배운 적도 없는데, 그렇게 잘 빨 수가 없다. 하루의 대부분을 잠으로 보내는데, 그것은 아기의 생존과 성장에 필수적이다. 아기의 생존과 성장 그리고 애착 형성에 젖이나 잠 못지않게 중요한 것이 접촉이다.
아기는 자신을 규칙적으로 돌봐주고 접촉해주는 사람이라면 누구든 가리지 않고 애착을 갖게 된다. 맞벌이 부모를 대신해서 아기를 돌봐주는 친 할머니든지, 아파서 입원한 엄마를 대신해 아기를 보고 있는 무심한 아빠든지 상관이 없다. 아기들이 엄마에 대해서 더 빠른 시기에 강한 애착을 느끼는 것은, 엄마가 직접 아기와 ’접촉‘하면서 돌보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아이의 생존에 있어서 접촉이 없어서는 안 될 절대적인 요인이라는 것을 어떻게 알 게 되었을까?
앞에서 소개한 ‘할로우와 짐머맨의 애착실험(1959)’에서 아기 원숭이의 애착 형성에 가장 중요했던 것은 철사 엄마 원숭이 앞에 높인 먹을 것 보다는 부드러운 헝겊으로 만든 엄마와의 접촉이었다. 당시 실험자들은 이 실험이 사람에게도 동일하게 적용될 수 있는지 궁금했다. 하지만 원숭이에게 했던 실험을 아기들에게 한다는 것은 윤리적인 문제가 있어서 진행할 수 없었다. 그러다가 의도치 않은 계기를 통해서 아기를 대상으로 한 ‘애착연구’가 진행될 수 있었다.
제2차 세계대전이 끝나던 해인 1945년에 오스트리아 정신 분석가이자 정신과 의사였던 르네 스피츠(René Spitz)는 우연한 기회에 전쟁고아들을 모아놓은 일반 고아원과 여성 재소자가 보모 역할을 하는 감옥 에서 아기들이 각각 얼마나 잘 지내는지를 비교하는 연구를 할 수 있게 되었다.
두 곳 모두 아기들에게 충분한 음식과 의복이 제공되었다. 특히 고아원은 여성 재소자들이 있는 감옥 보다 깨끗한 시설과 영양이 풍부한 음식을 제공하는 수준 높은 환경을 자랑했다. 그런데, 고아원 아이들 중 3분의 1 가량은 생애 첫 해를 넘기지 못하고 죽어갔고, 남은 아이들도 신체적으로나 정신적으로 발달이 부진했다. 더욱이 남은 아이들에게선 체중이 줄어드는가 하면 움직이지 않았으며 표정마저 사라지는 모습이 관찰되었다. 조사결과 사망 원인은 전염병도 영양실조도 학대도 아니었다.
반면에 여성 재소자들이 보모 역할을 하며 아기를 돌보던 교도소는 위생수준도 안 좋고 음식의 질도 낮았지만, 이곳에서 사망한 아이는 단 한명도 없었다. 왜 이런 차이가 생긴 걸까? 르네 스피츠가 발견한 결정적인 차이는 바로 아기들이 피부로 경험하는 누군가의 손길, 즉 접촉의 유무였다. 일반 고아원은 시설이나 영양 공급에 관해서는 부족함이 없었지만, 아기들에게 접촉을 제공할 만한 양육자가 적었고, 아기를 안아주는 행동을 최소화하는 규칙을 세우고 따랐다. 하지만 여성 재소자가 있는 교도소는 일반 고아원보다 시설이나 환경은 열악했지만 아기들의 친엄마뿐만 아니라 다른 여성재소자들이 아기들의 보모가 되어서 따뜻한 접촉을 지속적으로 제공해주었다. 여기에서 르네 스피츠는 아이의 생존과 성장에 더 큰 기여를 하는 건 완벽한 환경이 아니라 살과 살이 맞닿는 접촉이라는 결론을 내리고, 그의 ’접촉 박탈’에 관한 연구 결과를 발표했다.
이 같은 르네 스피츠의 연구 결과가 나온 이후 고아원은 아기들을 보살피는 인력을 늘리고, 아기들을 안아주고, 말을 걸어주면서 돌보 주도록 했더니 유아 사망률이 급감했고, 발육 부전이나 정신 지체에 의한 손상을 겪는 문제도 사라졌다.
르네 스피츠의 이 연구는 사람은 먹고, 자고, 입는 것만으로 살 수 있는 존재가 아니라 신체 접촉을 통해서 사랑이 채워질 때만 살아갈 수 있는 존재이며, 접촉의 결핍은 아기들의 신체적, 정서적 미성숙, 인지 발달의 지체뿐 아니라 죽음까지도 불러올 수 있는 무서운 현상이라는 사실을 입증한 첫 번째 연구였다. 한편, 아이가 접촉을 경험할 때 아이의 뇌에서는 중요한 변화가 생겨난다.
접촉을 경험할 때 아이의 뇌에서 일어나는 중요한 변화들
접촉은 피부를 통해서 이뤄진다. 피부의 무게는 3kg으로 우리 몸에서 가장 무거운 기관이다. 피부는 추위와 더위 같은 온도와 외부 자극으로부터 몸을 보호하며 감촉을 느끼는 무수한 수용체로 덮여 있다. 아이의 피부를 통해서 전해지는 느낌은 아이의 뇌에 즉각적으로 전달된다. 그런 이유에서 피부를 겉으로 드러난 두뇌라고도 부른다. 미국 베일러 의대의 연구 결과에 따르면, 부모의 스킨십을 잘 받지 못한 아기는 뇌 발달이 정상아보다 20~30% 정도 늦었고, 정서적으로도 불안한 모습을 보였다.
반면에 부모나 양육자가 자주 안아주고 자주 쓰다듬어 주어서 평소 신체 접촉을 많이 경험한 아이는 두뇌가 발달하고 정서적으로도 안정적으로 성장했다. 부모와 접촉을 경험하는 순간 아이의 뇌에서는 옥시토신과 엔도르핀이 분비된다. 옥시토신은 뇌와 근육에 작용하는 호르몬으로써 다량이 분비되면 근육이 이완되고 마음이 편안해 지면서 정서적인 안정감을 얻는다.
특히 부모가 가볍게 쓰다듬기, 마시지 혹은 포옹 같은 신체 접촉을 해주어서 아이의 옥시토신 분비가 촉진되면 아이는 자신이 가치 있고 사랑스러운 존재라는 생각을 갖게 되고, 낯선 세상을 알아가는 것을 주저하거나 두려워하지 않고 자유롭게 탐색할 수 있게 된다.
필자가 오래 전에 6개월 동안 상담했던 5살짜리 여자 아이가 있었다. 아이는 어린이 집에서 적응하지 못하고, 아이들과 놀다가 갑자기 혼자 나가서 돌아다니고, 친구들과 눈을 마주치지 못하며, 언어와 두뇌발달도 또래에 비해 늦다보니 어린이집 입장에서는 아이를 계속 데리고 있어야 할지 다른 곳에 가도록 해야 할지 고민이 되고, 또 다른 곳으로 보내자니 어디로 보내야 할지 모르겠어서 자문과 상담을 겸해 필자에게 의뢰가 온 사례였다.
필자는 아이의 반응과 행동을 보고, 유사자폐와 반응성 애착장애의 가능성을 염두 해 두었다. 유사자폐는 자폐의 일종으로 선천적으로 문제를 가지고 태어난다. 이런 아이는 언어능력에는 문제를 보이지 않지만, 공감하는 능력에 문제가 있어서 사회성에 어려움이 있다. 반응성 애착장애는 후천적인 장애로서 아이의 결정적인 시기에 양육자와의 애착에 문제가 있을 때 생길 수 있다.
필자는 아이의 문제를 정학하게 확인하기 위해서 아이를 병원에서 진단받게 했는데, ‘반응성 애착장애’였다. 부모로 부터 아이가 키워진 사연을 들어보았다. 부모가 맞벌이를 하느라, 이는 아기 때부터 보모 할머니에게 맡겨졌다. 할머니는 아이를 등에 업고 여기 저기 산책을 많이 다니셨다.
하지만 등에 업힌 아이가 울어도 그냥 걷기만 하시고, 아이의 몸을 쓰다듬거나, 마사지를 해주는 등의 신체접촉은 거의 없었고, 아이와 눈을 마주치거나 말을 걸어주는 등의 상호작용도 없으셨다. 아이가 이 보모 할머니와 함께 있으면서 경험한 것은 르네 스피츠가 관찰했던 시설 좋은 고아원에 있던 아기들과 큰 차이가 없었다.
이 아이는 부모나 양육자로부터 필요한 접촉을 제공받지 못해서 두뇌 발달이 늦고, 뇌에서 정상발달을 위해 필요한 호르몬이 적절하게 분비되지 못했기 때문에 반응성 애착장애가 생겼다고 볼 수 있다. 이 아이처럼 부모나 양육자로부터 스킨십이 부족한 아이는 정서적으로 불안하고 산만해지는 특성을 보인다. 그리고 신체적, 정신적 발달이 늦고, 갑자기 성질을 부리거나 돌발적인 행동을 보이며, 물체에 집착하는 등의 행동을 보이기도 한다. 이런 아이들은 성인이 되어서도 정서적으로 불안정하고, 우울증에 시달리거나, 친구관계, 이성 관계에 적응을 못하게 될 확률이 높다.
필자는 부모와 아이를 6개월 간 상담했다. 이 과정에서 아이의 행동에는 약간의 변화가 있었지만 크게 호전되지는 않았다. 정작 상담을 통해서 많이 바뀐 것은 아이의 부모였다. 부부는 본인들의 맞벌이로 본의 아니게 아이가 중요한 시기에 잘 돌봐주지 못한 것을 모두 부모의 책임으로 인정하며 마음 아파했다. 부부는 상담에서 배운 대로 집에서 아이에게 의도적으로 더 많이 더 다양한 방법으로 스킨십을 하고, 놀아준다고 했다. 그러다 보니 아이에 대한 애정이 이전보다 더 커졌다고 말했다. 이 부부의 사례처럼 부모가 자녀에게 의도적으로 제공한 스킨십의 영향으로 부모가 자녀에 대해 갖는 부성애나 모성애가 높아지는 경우가 적지 않다. 연구 결과에 따르면, 부성애나 모성애가 많아서 아이에게 더 많이 스킨십을 하기보다, 아이에게 스킨십을 많이 하다 보니, 부모의 부성애와 모성애가 더 커진다고 한다. 혹시 아이에게 애정이 안 간다고 느끼는 부모가 있다면, 애정이 생길 때 까지 기다릴 것이 아니라 오히려 더 의도적으로 아이에게 스킨십을 제공해보자.
[남동우 소장의 저서 '부모의 말 한마디 행동 하나가 아이를 바꾼다' 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