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따뜻한 한 사람이 아이의 회복력을 높인다
하이브가족상담센터 조회수:520
2021-10-07 13:04:16

아이가 잘 성장하는 데는 따뜻한 한 사람이 필요하다

 

필자는 어느 날 TV에서 고아원 아이들의 일상과 성장과정을 다룬 다큐멘터리를 흥미롭게 시청한 적이 있다. 이 고아원에 오래전부터 방문하면서 아이들의 멘토가 되어준다는 한 판사님이 말했다. “고아원 아이들이라고 해서 자신들이 고아라는 것을 항상 인식하며 살진 않아요. 평범한 아이들처럼 즐거울 때는 웃고, 사춘기도 겪고 그들만의 꿈을 향해 열정적으로 사는 아이들도 적지 않습니다.”

“그런데 자신들이 고아라는 사실을 절감할 때가 있어요. 자신의 삶에서 뭔가 중요한 결정을 내려야 할 때, 자신의 고민을 말하면서 속내를 털어놓고 싶은 때, 주위에 그런 사람을 한 사람도 찾을 수 없을 때에요. 만약 그때 아이의 속내를 따뜻하게 들어줄 수 있는 한 사람이 있다면 이 아이들은 놀랄 만큼 평범하게 성장합니다.”

필자는 판사님의 말씀 중에 “고아처럼 어려운 환경에 놓인 아이도 자신을 속내를 들어줄 따뜻한 한 사람이 있다면 평범하게 성장할 수 있다”는 말이 무척 인상 깊었다. 필자는 이 말을 듣고 ‘사람이 평범하게 성장하기 위해서는 따뜻하게 반응해주는 사람이 최소한 한 명은 필요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해보았다.

한 조사에서 한국의 청소년과 젊은 성인들에게 자신에게 ‘의미 있고 중요한 사람’을 적어보고 그 이유를 말해보라고 했다. 답변한 사람 중의 대다수가 “자신의 생각과 감정을 솔직하게 표현할 수 있도록 따뜻하게 받아주는 사람”이라고 답했다.

아이가 성장하는 물리적 환경도 중요하겠지만, 그것보다는 아이가 경험한 한 사람과의 관계의 질이 아이의 높은 자존감을 갖는 성장에 더 중요할 수 있음을 일깨워준 유명한 연구가 있다. 하와이 군도 북서쪽에 카우아이라는 섬이 있다. 이 섬 전체가 울창한 열대 정원 같다고 해서 ‘정원의 섬(Garden Island)’이라고 불릴 정도로 아름다운 곳으로 영화 <주라기 공원>의 무대가 되기도 했다.

연구가 진행되었던 당시에 이 섬 주민들은 대대로 극심한 가난과 질병, 정신질환 혹은 범죄에 연루되었다. 1955년 이 섬에서는 833명의 아기들이 태어났다. 미국 정부의 지원을 받는 정신과 의사, 사회복지사, 심리학자로 구성된 연구진들은 이 아이들에 대한 30년이 넘는 종단연구를 시작했다.

연구진들은 이 아기들 대부분이 사회 부적응자로 성장할 것이라고 가정했다. 연구자들의 관심은 어떤 경험이나 사건들이 이 아이들을 사회적 부적응자나 정신질환자 혹은 범죄자가 되게 하는 요인인지를 밝히는 것이었다. 이 섬이 연구대상이 된 것은 무엇보다도 그 섬 주민들의 열악한 사회경제적 환경과 함께 그 섬에서 태어난 아이는 성인이 되어서도 외부로 나가지 않고 대부분 그 섬에 살기 때문에 추적 조사가 용이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연구자들의 가정은 빗나갔다. 연구에 참여한 아이들 중 8.6%에 해당하는 72명이 문제를 일으키지 않았기 때문이다. 이들은 더군다나 고위험군 가정환경으로 분류되었던 201명에 포함된 아이들이었다. 이 72명은 오히려 부유한 가정환경에서 자란 아이들 못지않은 도덕적 성취와 사회적 성공을 이루어냈다. 온갖 어려움과 부족함을 경험하면서도 잘 자란 이 72명의 아이들은 무엇이 달랐을까?

당시 연구진 중 심리학자였던 에미 워너(Emmy Werner) 교수는 이 72명이 문제를 일으키지 않은 요인을 추적 조사하다가 이들 모두가 가지고 있는 하나의 공통점을 발견하게 된다. 그것은 이 아이들 주변에 그 아이의 입장을 받아주고 이해해주는 적어도 한 명의 어른이 있었던 것이다.

그 한 명의 어른은 아이의 엄마나 아빠였을 수도 있고, 성직자나 선생님 혹은 할아버지나 할머니 혹은 이웃 어른이었다. 경제적 궁핍, 부모의 이혼, 안전하지 못한 생활 등 열악한 환경이었지만 이 아이들이 연구자들의 상식적인 기대를 벗어나 잘 자랄 수 있었던 단 하나의 요인, 바로 그것은 아이를 지지하고 격려해주었던 따뜻한 한 사람의 존재였다.

 

따뜻한 사람의 반응은 공감하고 배려하는 것이다

 

어떤 사람이 길을 가다가 깊은 구덩이에 빠졌다. 구덩이가 너무 깊어 빠져나올 수가 없자 그는 도와달라고 소리치기 시작했다. 학문이 깊은 교수가 그곳을 지나다가 구덩이에 빠진 사람을 발견했다. 그는 구덩이에 머리를 들이밀고 이 운수 사나운 사람에게 훈계를 늘어놓았다. “도대체 얼마나 어리석었으면 사람이 구덩이에 다 빠진단 말이오? 앞으로는 좀 더 조심해야겠소이다. 혹시 구덩이에서 나오거든 항상 발밑을 잘 살피구려.” 교수는 이렇게 말하고는 가버렸다.

그 다음에 덕이 높은 성직자가 지나가다가 구덩이를 들여다보며 말했다. “내가 팔을 뻗어볼 테니 당신도 팔을 힘껏 뻗어보시오. 그래서 당신 손을 잡을 수 있다면 끌어내주겠소. 그리해 두 사람은 힘껏 팔을 뻗어보았지만 아무 소용이 없었다. 구덩이가 너무 깊었기 때문이다. 그러자 성직자는 안됐지만 하는 수 없다며 그 사람을 운수소관에 맡기고 떠나버렸다.

그 뒤에 일을 마치고 집으로 돌아가던 농부가 그곳을 지나게 되었다. 그는 그 사람의 딱한 처지를 보고 곧바로 구덩이에 뛰어들었다. 그러고는 그 사람을 어깨 위에 올라서게 한 다음 팔까지 쭉 뻗어 구덩이에서 건져주었다. (『느낌이 있는 이야기』 10쪽)

 

이 이야기에서 누가 따뜻하게 반응한 사람인가? 세 번째 남성이다. 그는 구덩이에 빠진 사람의 처지와 심정을 헤아리는 공감과 자신을 던져 구조하는 배려의 행동을 실천했다. 이처럼 따뜻한 반응은 상대의 입장에서 헤아리는 ‘역지사지’(인지적 공감)와 상대의 심정을 헤아리는 ‘이심전심’(정서적 공감)의 공감을 통해서 배려를 실천하는 것이다.

심리학에서는 정서적으로 건강한 사람을 상대의 희로애락(喜怒愛樂)에 따라 적절하게 대응할 수 있는 사람이라고 말한다. “즐거워하는 사람과 함께 즐거워하고, 우는 사람과 함께 울라”는 성경의 말과 같다. 따뜻한 사람은 따뜻하게 반응할 수 있는 사람이고, 정서적으로 건강한 사람이다. 따뜻한 사람의 반응은 기쁨은 크게 하고, 슬픔은 작게 한다.

필자는 이와 관련한 장면을 직접 목격한 적이 있다. 얼마 전 운전면허 적성검사 갱신을 위해서 면허시험장에 갔었다. 서류를 접수하고 면허증을 기다리다가 캔커피를 사기 위해 근처 편의점에 들어갔다. 물건을 고르는데, 옆에서 한 여성이 전화하는 소리가 들렸다. 20대 초반의 여성이 이어폰을 끼고 누군가와 통화하고 있었다. 여성은 낮고 떨리는 목소리로 말했다. “엄마, 나 합격했어.” 여기까지 들었을 때 필자는 면허시험장에 흔하게 들을 수 있는 통화라고 생각했다.

캔 커피 값을 치르고, 뒤돌아 나가려던 차에, 그 여성과 엄마의 통화가 계속 이어지는 것이 들렸다. 그녀는 왼손에 구입한 물건과 가방을 들고 있었고, 오른손은 귀에 댄 핸드폰을 밀고 있었다. 그런데 그녀의 오른팔 손목이 없었다.

순간 놀라움과 함께 울컥하는 마음이 들었다. 그녀가 한쪽 손목 없이 실기 시험을 치루고 합격까지 한 것이 대단해보였기 때문만은 아니었다. 그녀의 합격 소식을 듣고, 진심으로 따뜻하게 축하해주었을 그녀 어머니의 모습이 연상되었기 때문이다. 오른쪽 손목이 없는 그녀에게 ’합격‘은 합격을 넘어선 인생에서 ‘승리’한 순간이었을 것이다. 어머니가 그녀의 ‘합격’ 소식을 따뜻하게 받아주었을 때 그녀의 마음에는 ‘잔치’가 시작되었을 것이다.

한편으로 필자는 이런 생각을 해보았다. 만약 그녀의 어머니가 그녀가 합격 소식을 따듯하게 받아주지 않고 퉁명스럽게 반응했더라면 어땠을까? “그러니? 조심해서 들어와라. 나중에 보자.” 어머니가 이렇게 건조한 목소리 톤으로 말했다면 샴페인 터지듯 즐거웠던 그녀의 마음은 김이 빠지고, 축 쳐진 어깨로 집으로 돌아오지 않았을까?

아이가 나름 열심히 노력한 시험에 떨어져서 힘들어 하고 있다. 이때 아빠의 말, “너 잘되라고 학원도 보내주고 과외도 시켜주었는데, 결과가 이게 뭐냐?” “네가 정말 죽을힘을 다했다면 이런 결과가 나올 수 있어?” “그 정도 밖에 못할 거면 그냥 포기해.”

성폭행을 당한 뒤 행인의 신고로 병원에 입원한 중학생 딸을 찾아간 엄마의 말, “너 이제 어떻게 하니? 너 여잔데… 앞으로 어떻게 사니?” 이런 말을 들은 자녀는 다리에 힘이 풀리면서 다 포기하고 싶어질 것이다. 왜 그럴까? 아이가 경험하고 있는 심정이나 노력의 과정을 물어보거나 알아주기 보다는, 결과에만 초점을 맞추어서 말했기 때문이다.

한편, 시험에 떨어져 실의에 빠진 아들에게 이렇게 말한다면 어떨까? “열심히 준비하던 것 같던데, 결과가 생각 같지 않아서 많이 실망스럽겠구나. 그간 고생했으니 수고했다. 일단은 잘 먹고 푹 좀 쉬어라.” “아빠랑 탕수육 먹으러 갈까?” 병원에서 딸을 본 엄마가 이렇게 말한다면 어떨까? “우리 딸, 몸은 좀 어떠니? 많이 무서웠지? 이만해서 너무 다행이다. 열심히 치료받고 건강해지자. 엄마는 우리 딸이 이만해서 정말 너무 감사해.” 이렇게 따뜻하게 반응해준다면 아이들은 주저 않아 낙심하는 대신 다시 일어날 용기를 얻게 되지 않을까?

2001년 월드컵이 한참일 때, 한국과 브라질의 경기가 진행 중이었다. 한국과 브라질 선수 모두 열심히 뛰면서 선전했다. 그런데 해설자의 말의 따르면, 브라질 선수들을 마음껏 점프하면서 날아다니는데, 한국 선수들은 쉽게 점프를 하지 못하고 몸을 사렸다. 해설자는 그 이유를 다음과 같이 설명했다.

“브라질 선수들은 어린 시절 처음 축구를 배울 때부터 잔디구장에서 시작해요. 축구하면서 뛰고, 점프하다가 넘어져도 천연잔디구장이니까 넘어져서 별로 다치지를 않거든요. 어릴 때부터 그런 기억이 있으니까 커서 실전 경기를 할 때 몸을 사리지 않고 즐기는 거예요.

반면에 한국 선수들은 어릴 때 흙이나 인조잔디구장에서 처음 축구를 시작하거든요. 공을 차거나 점프하다가 넘어지면 무릎이나 팔이 까이고 화상을 입게 되요. 그러면 그 아팠던 기억 때문에 축구를 할 때 마다 저렇게 몸을 사리게 되는 거죠.”

부모는 자녀의 축구장이다. 아이가 부모로부터 흙이나 인조잔디에 넘어졌을 때처럼 아픈 경험을 자주하면 아이는 위축되고, 인생을 즐기기 어려울 것이다. 하지만 부모로부터 천연 잔디구장처럼 푹신하고 안전한 경험을 자주하면 아이는 신나게 놀고, 까불면서 인생이라는 축구경기를 ‘자기답고’ 신나게 ‘즐길 수’ 있게 될 것이다.  

 

[남동우 소장의 저서 '부모의 말 한마디 행동 하나가 아이를 바꾼다'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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