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을 가장 행복하게 만드는 것은 양질의 인간관계다.
얼마 전 KBS에서 일반 국민을 대상으로 “행복하기 위해서 무엇이 필요한가?”라는 질문으로 설문조사를 했다. 가장 빈도수가 높았던 대답은 40.6%를 차지한 “돈”이었고, 두 번째는 “건강”으로 28.44%였다. 만약 이 대답이 불변의 진리라면 우리나라 사람들은 20년 전보다 최소 2~3배는 더 행복해야 한다. 왜냐하면 20년 전 우리나라의 1인당 국민소득은 1만 달러 정도였던 것이 2018년에는 3만 달러로 약 3배의 성장을 이루어냈기 때문이다.
실제로는 어떨까? 2000년 경제협력개발기구(OECD)와 주요 20개국(G20)이 포함된 39개국에서 발표한 ‘삶의 질과 만족도’에서, 우리나라는 27위로 하위권이었다. 그로부터 17년 후인 지난 2017년 OECD 34개 회원국을 대상으로 발표한 ‘삶의 질과 만족도’에 있어서도 우리나라는 여전히 27위에 머물렀다. 이 통계는 우리나라 성인들을 대상으로 한 것이다. 그렇다면 우리의 자녀세대인 아동·청소년에 대한 통계는 어떨까?
2010년 한국 방정환재단과 연세대사회발전연구소가 진행한 연구에 따르면 OECD 국가의 ‘어린이·청소년의 물질적 행복도’에서 우리나라는 4위(1위는 핀란드)였으나, OECD국가의 ‘어린이·청소년의 주관적 행복도’에서는 23위에 머물렀다. 3년 뒤인 2013년 보건복지부가 시행한 아동종합실태조사’에서도 ‘우리나라 아이들의 삶의 만족도’는 60.2점(100점 만점)으로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국가 중에서 꼴찌였다. 이처럼 우리나라는 물질적으로 더 부유해졌는데 부모와 자녀가 경험하는 삶의 만족도와 행복감은 왜 여전히 낮은 걸까?
미국의 경제학자 리처드 이스털린(Richard Easterlin)은 행복과 물질의 풍요사이의 상관관계를 밝힌 것으로 유명하다. 그의 이름을 딴 ‘이스털린의 역설’이라는 말까지 있다. 그의 연구결과에 따르면 소득이 일정 수준에 이르고 기본적인 욕구가 충족된다면 소득증가가 더 이상 행복에 큰 영향을 끼치지 않는다.
예를 들어, 우리나라 사람들이 60-70년대에 못 먹고 못 살 때에는 조금 더 잘 먹고, 잘 살게 되는 과정에서 행복감을 경험했지만, 요즘처럼 어느 정도 기본적인 의식주가 충족되는 사회에서는 더 잘 먹고, 더 잘 입고, 더 좋은 곳에서 사는 것만으로 주관적인 행복감이 비례적으로 증가하지 않는다는 말이다. 그렇다면 인간의 주관적 행복감 결정하는 요인은 무엇일까?
미국의 하버드 대학에서는 1938년부터 30년 동안 대학 졸업생 724명을 대상으로 그들의 삶의 질을 연구하는 종단연구를 시행했다. 연구방식은 연구팀이 매년 그들을 직접 인터뷰해서 설문지를 작성하는 방식으로 진행했다. 세계 최고 명문중 하나인 대학인만큼 졸업생들의 대다수는 사회적으로 성공한 사람들이 많았다. 하지만 그들의 삶의 질은 행복하게 늙어가는 사람과 그렇지 않은 사람, 이렇게 두 부류로 나뉘어 졌다.
그 삶의 경험을 가르는 기준은 바로 ‘양질의 인간관계’였다. 가족을 유지하고 있는 사람의 삶의 만족도는 높은 편인 반면, 아무리 사회적으로 성공했어도 친구가 없고 이혼이나 별거로 가족을 잃거나 떨어져 있으면 ‘불행’했다. 가장 삶의 만족도가 높은 사람은 최소한 한두 명의 친한 친구가 있고, 배우자 및 자녀와 종종 즐거운 시간을 갖고, 대화를 나누는 사람이었다. 연구팀은 연구를 마무리하면서 세 가지 결론을 내렸다.
첫째, 삶을 가장 행복하게 만드는 것은 인간관계다.우리나라 아이들의 삶의 만족도와 행복지수가 낮은 이유에 대해 전문가들은 우리나라 아이들의 학업스트레스가 높고, 친구나 가족과 함께 보내는 시간은 적기 때문이라고 분석했다. 연구 보고서에서 우리나라 아이들은 다른 나라 어린이들에 비해서 학교 수업 이후에 학원 등으로 방과 후 학습에 많은 시간을 쓰는 반면, 친구와 함께 놀고, 독서하고 운동을 하는 등 여가활동에 보내는 시간과 가족과 함께 대화하면서 보내는 시간은 조사국 중에서 가장 적었다. 그렇다면 우리나라 아이들은 무엇에서 행복감을 경험한다고 보고했을까?
‘8차 아동 청소년 행복지수 국제 비교 연구 보고서(2015)’에 따르면 우리나라 아이들의 성적이 향상되는 것이나 경제 수준이 높아지는 것보다 부모와의 사이가 좋아지게 된 것에서 행복감을 느꼈다. 가정의 경제 수준이 높더라도 아이가 엄마와의 사이가 안 좋으면 49%만이 행복하다고 말했고, 사이가 좋으면 81%로 삶의 만족도가 높아졌다. 아이의 성적이 동일하게 중간 수준이더라도 아빠와의 사이가 좋으면 75.6%가 삶이 만족스럽다고 대답하고, 아빠와의 관계가 안 좋으면 만족도는 47.7%로 떨어졌다.
이 결과에 따르면 부모와 사이가 좋다고 느끼는 아이는 성적이나 경제수준이 비슷하거나 높은 아이들보다 삶이 만족스럽고 행복하다고 느낀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다른 어떤 요인보다 부모와 자녀간의 유대감이 아이의 주관적 행복감, 즉 높은 삶의 질에 중요한 역할을 한다는 것이 밝혀진 것이다.
아이의 행복은 부모와 함께한 양질의 시간에 달려있다
둘째, 인간관계의 양보다 질이 중요하다. 즉 부모와 함께 보낸 양질의 시간만이 아이의 행복감으로 이어진다. 부모가 아이와 단 10분을 함께 시간을 보낸다고 해도 아이가 부모에 대한 유대감을 느끼며 시간을 함께 보낸다는 느낌을 갖게 해주는 것이 중요하다.
아빠가 모처럼 아빠와 아이가 함께 TV를 보고 있다. 저녁에 아내가 남편에게 묻는다.
아내: 당신 오늘 아이하고 잘 놀아줬어요?
남편: 그럼, 모처럼 좋은 시간을 보냈지.
아내: (아이에게 묻는다.) 오늘 아빠하고 잘 놀았니?
아이: 아니요. 그냥 텔레비전만 봤어요.
아빠 입장에서는 아이와 함께 TV를 본 것이 잘 놀아준 것이다. 아이와 함께한 시간의 양만 채우면 된다고 믿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아이의 입장은 아빠와 달랐다. 아이는 아빠와의 상호작용을 원했다. 그것이 아이가 정말로 원한 양질의 시간이다.
필자가 최근에 차를 운전하다가 라디오에서 들은 공익광고 내용이다. 아빠가 거실에서 게임을 하고 있다. 옆에서 한심하게 아빠를 보고 있는 아내가 말한다.
아내: 당신 아들 꿈이 뭔 줄 알아?
아빠: 아들, 꿈이 뭐야?
아들: 주인공이요.
아빠: 주인공?
아들: 아빠 게임의 주인공! 그럼 아빠하고 매일 같이 놀 수 있잖아.
아빠: 아들, 우리 축구하러 갈까?
아들: 와, 정말이요?
아이가 부모와 함께 축구를 하고, 야유회에 가고, 대화를 하는 양질의 시간은 ‘진짜’를 경험하는 것이다. 부모와 양질의 시간을 가져보지 못한 아이는 PC게임이나 술, 담배 같은 ‘가짜’에 빠지고 중독에 이를 수 있다. ‘가짜’는 자극을 가공하고 압축했기 때문에 진짜보다 더 흥미롭고 짜릿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 결과는 피폐함과 일상의 부적응이다.
‘가짜’에 빠지는 것은 마치 꿈속에서 아무리 산해진미를 먹는다고 해도 꿈에서 깨면 배가 고픈 것과 같다. 진짜로 먹은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밥 한 공기에 반찬이 한두 가지만 있어도 진짜로 먹어야 배가 부르다. 아이가 부모와의 즐거운 상호작용을 통해서 ‘진짜’를 경험하게 해주는 것은 아이가 ‘가짜’에 중독되지 않고, 인생이라는 여행을 ‘자기답고’ ‘함께 즐겁게’ 살 수 해주는 것이다.
미국 남부 시골의 한 농장. 아버지는 12년 전 아내와 사별하고 쌍둥이 형제를 포함해 7남매를 홀로 키우고 있었다. 그는 오전과 오후에는 자신의 농장에서 일하고, 저녁에서 마을의 한 식료품 가게에서 아르바이트 일을 하면서 가계를 꾸렸다.
한번은 여러 신문사가 이 집 자녀들을 취재하기 위해서 방문했는데, 그 이유는 자식들이 모두 모범적인 생활을 한다는 것이 알려졌기 때문이다. 7남매 중 5명이 미국의 유수 대학에 장학생으로 다니고, 중학교와 고등학교에 다니는 두 자녀도 최근 지역 신문에서 공모한 글짓기대회에서 수상했으며, 학생들의 추천으로 타의 모범이 되는 학생으로 선발되어 학교장의 표창도 받았다.
인터뷰에서 기자들은 자녀들에게 그 비결을 물었다. 자녀들의 대답은 한결같았다. “아빠는 늘 우리와 함께 계셨어요.” 기자들은 의아해 했다. 그들은 아버지가 아침부터 저녁까지 농장과 마을 마트에서 눈코 뜰 새 없이 일하고 있다는 것을 이미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자녀들은 기자들의 혼란스러워 하는 표정을 눈치 채고는, “맞습니다. 아버지는 바쁘세요. 우리 가족은 매일 저녁 6시부터 8시까지 2시간 동안 돌아가면서 식사를 준비합니다. 그때 아버지는 저희와 함께 식사를 하시면서 우리가 하루 동안 어떻게 지냈는지 물어봐주세요. 우리에게 재미있었던 일은 없는지, 힘들었던 일은 무엇이었는지를 한명 한명에게 눈을 보면서 물어봐주시고, 귀담아 들어주세요.” “아버지와 함께 하는 매일 저녁의 2시간이 있었기 때문에 우리는 아버지가 늘 우리와 함께 하신다고 느낄 수 있었습니다.”
기자들은 아버지에게도 자식들이 모두 잘 성장하게 된 비결이 있는지 물었다. 아버지는 대답했다. “글쎄요. 저는 하루 중에 아이들과 함께 하는 저녁 식사 시간을 가장 기다립니다. 낮에 농장에서 일하거나 저녁에 마을 마트에서 아르바이트를 할 때도 아이들이 했던 말을 생각합니다. 즐거운 기분이 들면 흐뭇한 미소를 짓고, 어려운 일이 떠오르면 기도를 하죠.”
셋째, 좋은 인간관계는 기억력까지 증진시킨다. 즉 아이가 부모가 상호작용하면서 경험하는 친밀감은 아이에게 편안하고 행복한 감정을 불러 일으켜서 아이의 두뇌발달을 촉진시킨다. 왜냐하면 아이의 편안한 마음이 뇌의 정서를 담당하는 영역인 편도체와 기억과 인지를 담당하는 영역인 해마를 자극하고, 부모와 자녀가 상호작용할 때 아이의 뇌에 산소가 풍부하게 공급되면서 뇌신경의 연결을 도와 두뇌 발달을 촉진시키기 때문이다.
특히 정서를 담당하는 편도체는 기억을 담당하는 해마와 충동, 판단, 공감 등의 역할을 하는 안와전두엽, 감정조절과 학습평가, 동기부여 역할을 하는 대상회 등과 연결되어 있는데, 부모와 양질의 시간을 경험한 아이는 이 편도체가 두툼해지면서, 주변에 연결되어 있는 영역들과 더욱 밀접하고 안정적으로 상호작용하게 된다.
그 결과 아이는 안정적인 정서와 풍부하고 상세한 기억력 그리고 높은 공감능력을 갖출 수 있게 된다. 독일의 대문호 괴테(Goethe)는 “어른은 아이 시절의 추억을 먹고 산다”고 말했다. 부모와 함께 한 양질의 시간은 아이에게 추억이 되고, 아이의 기억 속에 ‘좋은 음식’으로 담긴다. 아이가 인생이라는 긴 여행을 할 때 이 ‘좋은 음식’ 덕분에 허기지지 않고 정서적인 풍요를 누리며 살 수 있다.
[남동우 소장의 저서 '부모의 말 한 마디 행동 하나가 아이를 바꾼다' 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