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부 사이는 평등하고 서로가 우선순위인 관계다
가족은 영어로 FAMILY다. 이 단어의 어원에 얽힌 에피소드가 있다. 한번은 필자가 버스를 타고 집에 가고 있었다. 버스에서는 라디오가 흘러나오고 있었다. 여자 아나운서와 한 남자 게스트가 이런 저런 얘기를 주고받았다. 남자 게스트가 여자 아나운서에게 물었다.
게스트: 가족이 영어로 FAMILY잖아요?
아나운서: 네.
게스트: 패밀리가 어떤 말의 줄임말인 줄 아세요?
아나운서: (약간 놀라는 목소리로) 패밀리가 줄임말이었어요?
게스트: 네. FAther, Mother, I Love You. 아빠 엄마, 제가 사랑해요.. 하하
아나운서: 정말 그렇네요. 하하~
게스트: 저도 확실히 알고 말씀 드리는 건 아니고요, 어디서 들은 거에요. 그럴 듯하죠?
아나운서: 네~
필자도 라디오를 들으면서, ‘정말 그럴 듯하다’는 생각을 했다. FAMILY라는 단어 속에 아이가 아빠 엄마를 사랑한다고 말하는 장면이 들어 있다니! 우리가 ‘가족’ 하면 떠올리는 모습과도 다르지 않았다. 여기서 한번 생각해보자. 가족이란 무엇인가?
오랫동안 함께한 직원을 ‘한솥밥 먹는 가족’이라고 말하고, 고아원 원생들은 원장님을 아버지, 원장님 아내를 어머니라고 부른다. 반려동물 1천만 시대, 반려 견, 반려 묘를 ‘우리가족’이라고 말한다. 부모의 이혼과 재혼으로 새 아빠, 새엄마와 함께 새로운 가족을 구성하기도 한다. 오랫동안 가깝게 지내온 친구나 이웃에게도 가족 같은 친밀함을 느낄 수 있다. 이렇듯 가족이란 단어가 포함하는 개념은 넓고도 다양하다.
그런데 어떤 형태의 가족이든 간에, 그 안에는 관계와 상호작용이라는 공통점이 있다. 특히 가족관계에서 어떤 상호작용을 하느냐에 따라서 기능적인 가족과 역기능적인 가족을 구분하기도 한다. 본 장에서는 일반적으로 통용되는 가족의 개념인 부부관계와 부모자녀의 관계를 중심으로 가족의 구조를 알아보고자 한다.
먼저 부부관계다. 부부는 모르던 남남이 인연으로 만나 가족이 된 것이다. 가족치료 교과서에 보면 가족의 시작은 ‘부부가 되었을 때’이고 가족의 해체는 ‘부부 중 한명이 사망하거나 이혼으로 부부가 해체되는 것’이다. 부부는 가족의 핵심이다. 이러한 부부관계는 크게 세 가지 유형으로 나누어 볼 수 있다.
첫 번째는 ‘가부장’이다. 이 유형은 남편과 아내 사이가 평등하지 않다. 한쪽이 높고, 한쪽이 낮다. 한겨레신문에서는 가부장을, “남성의 언어로 해석하고 편집하며, 여성의 말하기는 계속 실패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주로 남성이 경제생활의 주체가 될 때 이런 부부관계가 된다. 요즘은 아내가 경제 리더 역할을 하면서 가모장인 가정도 적지 않다. 가부장인 가정은 가장이 가장 윗사람이고 가정의 중심이다.
이러한 가정은 가장 중심으로 안정적으로 사는 것처럼 보일 수 있다. 하지만 부부간의 ‘평등한’ 대화나, 부모 자녀 사이에 열린 소통이 어렵기 때문에 부부사이나 부모자녀 사이에 친밀함 형성하기가 쉽지 않다. 주로 남편(아버지)이 말하고 아내(엄마)와 자녀들은 듣는다. 그러다가 스트레스가 높아지면 남편(아버지)은 화내고(폭력) 아내(엄마)와 아이는 참는다(침묵). 이런 남편은 보통 권위적인 아빠가 되고, 엄마는 침묵하는 가운데 아이를 보호하는 사람이 된다.
남편과의 대화가 어려운 아내는 남편보다 자녀 중심으로 생활하게 되고, 남편은 아이들을 더 우선으로 챙기는 아내에게 서운함을 느끼기도 한다. 남편은 아내에 대한 서운함을 대화로 풀기보다 화를 내고 ‘욱’한다. 아내는 이런 남편이 답답하면서도 참는 패턴을 반복한다. 이 과정에서 아이들은 불안함과 답답함 그리고 무서움 같은 감정을 느끼고 스트레스를 받는다.
두 번째는 ‘맞장’이다. 이 유형의 남편과 아내 사이는 평등하다. 하지만 서로 감정적으로 반응하면서 부부싸움을 반복한다. 이것을 부부간의 ‘힘겨루기’라고 말하기도 한다. 고래 싸움에 새우 등 터지듯’이 부모가 이렇게 자주 싸우면 아이들의 마음이 상하고 불안하다. 자녀 입장에서는 이렇게 감정적으로 ‘맞장을 뜨는’ 부모와 함께 사는 것이 마치 ‘화’라는 폭탄이 언제 터질지 모르는 전쟁터에 사는 것 같을 것이다. 자녀들은 안심하고 편하게 쉴 수가 없고, ‘폭탄’이 터지면 언제든 피하거나 숨을 준비에 불안감을 가지고 산다.
부부가 처음부터 서로에게 감정적으로 반응한 것은 아니다. 서로 대화하려는 노력이 번번이 실패로 돌아갔기 때문이다. 이들은 소통방식은 상대를 무시하는 비난 형이거나 관계나 사람보다 상황만 존중하는 초 이성형 소통방식을 사용했다. 내 입장을 먼저 이해받고자 했고, 내 심정을 먼저 알아주기를 바라는 자기중심주의로부터 지속됐고, 상대 배우자에게 묻고 제안하기 보다는 내가 말하고 통보하고 지시하는 방식이 점점 더 커졌던 것이다.
그러는 가운데, 남편과 아내는 서로를 소통이 안 되는 이기적인 존재로 인식하게 됐다. 서로 언성을 높이며 싸우는 것이 피곤하고 힘들기 때문에 다투게 될 상황을 만들지 않으려고 노력하면서 서로 눈치를 보고 방어적이 되어 대화를 잘 안하게 된다(침묵). 진솔한 소통이 부족하다보니 서로에 대한 실망과 오해와 커지고, 그것이 쌓여간 어느 한 순간 작은 스트레스에 분노가 ‘욱’하고 터지면서 다시 감정적인 싸움이 반복된다(폭력).
세 번째는 ‘협장’이다. 이 유형의 남편과 아내 사이는 평등하고, 서로 대화하며, 서로가 서로에게 가장 우선순위인 관계다. ‘손바닥도 마주쳐야 소리가 난다’는 속담처럼 ‘협장’은 두 손으로 손바닥을 치는 것처럼 협력하고 대화하는 부부관계다. 부부가 먼저 대화할 수 있고, 아빠 엄마로서 양육에 대해 협상하고 조율하기 때문에 부모 자녀 문제가 더 잘 풀린다.
‘협장’ 부부는 감정적으로 흥분하는 반응이 아니라 의식적이고 의도적으로 차분한 대화를 하는 부부다. 이런 부부는 상대를 비교하거나 비난하고 ‘욱’하는 반응대신에, 안전하게 나 전답법으로 말하고, 반영, 공감, 질문, 제안 같은 방법을 통해서 경청하며 소통한다.
가부장이나 맞장 부부 형태가 반드시 잘못된 것은 아니다. 문제는 가부장이나 맞장이라는 한 가지 형태에 고착되어서 융통성을 발휘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반면 ‘협장’ 부부는 ‘가부장’이나 ‘맞장’이라는 한 가지 방식에 고착되어 있지 않다. ‘협장’인 부부는 가부장과 맞장을 상황과 필요에 따라서 협상과 조율을 통해서 교차적으로 사용한다. 즉 ‘협장’ 부부는 필요에 따라서 ‘가부장’ 부부처럼 남편이나 아내가 위에서 리더 역할을 할 때가 있고, ‘맞장’ 부부처럼 치열한 공방전을 벌이는 등 부부의 역할에 융통성이 있다.
예를 들어 명절에는 아내가 가모장 역할을 하면서 집안일을 진두지휘하고, 가족 여행 때는 아빠가 가부장 역할을 하면서 리더십을 발휘한다. 자녀 양육에 관한 가이드라인을 정할 때는 부모가 맞장 유형으로 서로 머리를 맞대고 대화를 통해서 자녀양육에 관한 지침을 협의한다.
부모와 자녀 사이에는 위계가 있다
부모와 자녀 사이에는 위아래, 즉 위계가 있다. 부모가 윗사람이고 자녀가 아랫사람이다. 부모 자녀 사이에 위계가 있는 이유는 그것이 가족을 가족답게 만드는 자연스러운 질서이기 때문이다. 이것은 마치 물이 위에서 아래로 흐르는 것과 같다.
거창하게 말하자면 이것은 우주적인 질서 같은 것이다. 지구가 태양을 도는 공전의 주기가 조금이라도 느려지거나 빨라지면 지구의 생태계의 생존이 위태로워진다. 지구와 태양의 거리가 지금보다 멀면 대부분의 생물을 추위로 얼어 죽고, 조금이라도 가까우면 뜨거운 열을 이길 수 없어 고사하거나 타죽을 수 밖 에 없다.
이러한 우주적 질서처럼 부모 자녀 사이의 위계는 가족의 가족다움을 위해서 반드시 지켜져야 한다. <벤자민 버튼의 시간은 거꾸로 간다>는 영화가 있다. 영화 주인공인 벤자민은 태어날 때 이미 100살은 되어 보이는 모습이었다. 그런데 나이를 먹을수록 점점 젊어지다가 아기의 모습이 되어서 아내 옆에서 죽는다. 설령 당신의 부모님이 이 영화처럼 어느 순간 당신보다 젊어지시다가 아기의 모습으로 돌아가신다고 해도 부모님은 자식의 ‘윗사람’이다.
부모에게는 자녀의 윗사람으로써의 권위가 있다. 부모에게 권위가 있다는 것은 윗사람으로써 더 많은 힘과 권한을 가진다는 것이다. 이것은 권한을 남용해 권위적이 되는 것과 다르다. 부모로서의 권한과 권위가 주어진 이유가 무엇일까? 부모에게는 자녀를 적절하게 돌보고 양육해야 할 책임이 있기 때문이다. ‘내리 사랑’이라는 말이 있듯이 부모는 마치 폭포의 물이 위에서 아래로 떨어지듯, 자녀에게 삶의 노하우와 통찰을 전수하는 역할을 맡고 있다.
요즘 부모 중에는 권위가 있는 부모보다 친구 같은 부모, 아이를 잘 이해해주는 부모를 지향하는 경우도 많다. 이런 부모는 아이의 자율적인 성장을 중요하게 여긴다. 하지만 그 전에 아이에게 가르쳐야 할 것은 부모의 권위다. 친구처럼 격이 없고 자상한 부모가 나쁘다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부모와 자녀가 수평적인 친구가 되어서는 안 된다.
부모가 형제자매를 대하는 데에는 ‘공정함’이 필요하다. 형제자매는 태어난 순서나 나이의 많고 적음에 상관없이 동등한 수평관계이다. 따라서 부모는 자녀들을 대할 때 평등하게 대해야 한다.
나는 우리 집 첫째야. 밑으로 여동생은 은서가 있어. 아빠는 늘 나만 나무라지. 은서가 내 모형 자동차를 망가뜨려 화내면 오빠니까 참으로. 속상해서 울기라도 하면 사내 녀석이 눈물이나 찔찔 짠다나? 아빠는 어릴 때 한 번도 안 울었나 봐. 시험 점수를 나쁘게 받아오면 오빠가 `잘해야 동생도 따라 잘한대. 공부란 자기가 열심히 해야 잘하는 거지. 동생이 오빠 따라서 저절로 공부 잘해? 텔레비번 볼 때도 은서는 아빠 무릎에 앉아서 봐. 아빠 무릎은 두 개인데 양쪽에 하나씩 앉으면 안 돼? (아빠는 내 마음 알까?)
여기서처럼 “언니니까 동생에게 양보해야지”라는 말은 공정하지 않다. 그냥 “동생에게 양보해 줄 수 있니?”라고 물어보는 편이 낫다. “네가 형이니까 더 잘해야지?”라고 말하기 보다는, 담백하게, “잘하자”라고 말하는 게 낫다. 즉 부모가 자녀를 대할 때는 첫째 아이든 둘째 아이든 태어난 순서에 따라 차별하지 말고 평등하게 대하고 공정한 사랑을 주자.
[남동우 소장의 저서 '부모의 말 한 마디 행동 하나가 아이를 바꾼다' 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