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는 공감할 수 있는 능력을 타고 난다
공감하는 능력은 포유류(영장류 포함)와 인간에게서만 발견된다. 이 능력은 타고난 것이다. 일본 간사이 가쿠인 대학의 연구진은 쥐에게도 동료의 고통에 공감하는 능력이 있는지 알아보는 실험을 진행했다. 투명 플라스틱으로 만든 두 방에 각각 쥐를 집어넣고는 한쪽 방에만 물을 채웠다. 물이 점점 차들어가자 그 방에 있던 쥐는 겨우 자기의 머리를 내밀 수 있을 정도였다. 이때 옆에 방에 있는 쥐가 두 방 사이에 난 문의 빗장을 열어 물에 잠기고 있는 옆방의 쥐를 자기 방으로 건너오도록 도왔다.
이것이 어쩌다 생긴 우연이아니라 쥐가 가진 공감 능력을 보여 준 것으로 인정받는 또 다른 이유는 자신 앞에 놓인 먹이의 유혹까지도 물리치면서 옆방에서 물에 빠지고 있는 동료 쥐를 위해 문을 열었기 때문이다. 즉 연구진은 쥐를 가운데 방에 두고 한쪽 방에는 물에 빠진 쥐, 다른 쪽 방에는 쥐가 좋아하는 초콜릿을 뒀다. 쥐는 대부분 초콜릿이 있는 방문을 열기 전에 물에 빠진 쥐 쪽의 문을 먼저 열었던 것이다. 실험 결과의 신뢰성을 위해서 여러 번 같은 절차로 실험을 진행했지만 처음과 동일한 결과가 나왔다.
유튜브에 보면 개가 물에 빠진 자신의 주인을 구하고 뛰어드는 행동이나, 주인집 아이를 공격하려는 개와 맞서서 싸우는 고양이의 행동은 공감능력을 보여준다. 이처럼 동물이 공감능력을 가지고 이타적인 행동을 할 수 있는 능력은 선천적으로 타고난 것이다. 사람도 남의 처지를 헤아릴 수 있는 공감능력과 그에 따라서 상대의 필요를 채우려고 배려할 수 있는 능력을 타고 태어난다. 이것은 미국의 예일대학교의 심리학자들이 고안한 아기들의 인형극 실험을 통해서 입증되었다.
엄마 품에 안긴 생후 6개월 미만의 아기들에게 인형극을 보여준다. 막이 열리면, 오리 한 마리가 장난감 상자를 열려고 애쓴다. 오리는 뚜껑을 잡으려 하지만 꽉 움켜쥐지 못한다. 이때 각각 다른 색깔의 셔츠를 입은 곰 두 마리가 그 모습을 지켜본다. 잠시 후, 빨간색 셔츠를 입은 곰 한 마리가 오리를 돕는다. 오리가 상자 모서리를 붙잡고 뚜껑을 힘껏 열게 해준다. 곰과 오리가 잠깐 포옹한다. 그러나 곧이어 뚜껑이 다시 닫힌다. 이제 오리는 다시 뚜껑을 열려고 애쓴다. 이를 지켜보던 파란색 셔츠를 입은 다른 곰이 뚜껑 위에 올라앉아 오리를 방해한다. 여기까지가 인형극의 전부다.
이 인형극에서 빨간색 셔츠를 입은 곰 한 마리는 오리를 도왔고 파란색 셔츠를 입은 곰은 오리에게 심술을 부렸다. 막이 닫혔다가 다시 열리면, 진행자가 연극에 나왔던 곰 두 마리를 들고 아기들에게 다가간다. 진행자는 곰들을 아기 앞에 내밀어 한 마리를 고르라는 신호를 보낸다. 선택권을 주면 아기들은 친절했던 빨간 셔츠를 입은 곰을 쳐다보거나 손으로 가리킨다. 이 실험역시 신뢰성을 위해서 같은 연극을 다른 아기들에게도 여러 번 시행했지만 동일한 결과가 나왔다.
보통 아이들이 누군가에 대해서 신뢰할 만한 대상인지를 평가하기 위해서는 여러 해에 걸친 인생 경험과 학습이 필요할 것이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실험에 참가한 아기들은 걷지도 말하지도 못했지만 다른 사람의 행동에 대해서 짧은 시간 안에 판단하는 능력을 이미 갖추고 있음을 보여주었다. 이를 통해서 알 수 있는 것은, 포유류 이상의 동물이나 사람은 누구의 행동이 옳고, 누가 믿을 대상인지를 탐지하는 본능인 공감능력을 가지고 태어났음을 알 수 있다.
공감은 영어로 ‘Empathy’다. 이 단어의 어원은 독일어 'Einfhlung'로 'Ein은 ‘안으로', 'fuhlung’은 느끼다'라는 뜻을 갖는 것으로, '타인의 마음, 감정 그리고 현재 상태에서 그 사람이 하고 있는 생각을 내가 그 사람의 입장으로 들어가서 지각하고 느낀다'는 뜻으로 이해할 수 있다.
미국의 문화인류학자 로먼 크르즈나릭은 공감을 '다른 사람의 처지가 되어보고, 그들의 관점(인지적 측면)과 감정(정서적 측면)을 이해하고, 그 이해를 활용해 우리의 행동을 인도하는 과정'이라고 말했다. 전문가들은 이를 구분해 전자를 인지적 공감 능력으로, 후자를 정서적 공감 능력으로 설명한다. 이번 장에서는 이 중에서 인지적 공감에 대해서 먼저 알아본다.
인지적 공감은 상대의 입장에서 이해할 수 있는 능력이다
다음은 2006년 오바마 당시 미국 대통령이 미국 노스웨스턴대학교에서 했던 연설의 일부다. "공감한다는 것은 다른 누군가의 처지가 되어 보는 것입니다. 우리와 다른 사람의 눈으로, 배고픈 아이들의 눈으로, 해고된 철강노동자의 눈으로, 당신 기숙사 방을 청소하는 이민 노동자의 눈으로 세상을 바라보는 일입니다. 우리는 공감을 장려하지 않는 문화에 살고 있습니다." 이 연설의 내용은 한자어의 ‘역지사지’를 말하는 것으로 인지적 공감의 특징을 잘 말해주고 있다. 즉 인지적 공감은 상대의 경험을 그 사람의 입장에서 인정하고 이해하는 것이다.
어느 날 세 명의 장님에게 코끼리가 어떻게 생겼는지를 설명해 보라고 했다. 첫 번째 장님은 코끼리에게 다가가서 코를 만져보고는 확신한 듯이 말했다. “코끼리는 커다란 구렁이와 같습니다!” 두 번째 장님은 코끼리의 뿔을 만지며 말했다. “코끼리는 뽀족한 끝을 가진 커다란 창과 같습니다!” 마지막으로, 세 번째 장님은 코끼리의 다리 부분을 더듬거리며 코끼리는 둥그렇고 아주 큰 나무와 같다고 말했다.
이처럼 똑같은 동물을 갖고서도 장님들은 제각기 느낀 대로 멋대로 해석했다. 똑같은 현실도 바라보는 방식에 따라 해석이 달라질 수 있다. 사물은 단지 어떤 측면에서 바라볼 것이냐에 따라 달라지는 것이다. (『가족을 변화시키는 56가지 이야기』 36쪽)
이 우화에서 장님들은 코끼리의 특정 부위를 만져보고 그것이 코끼리의 전부라고 믿으면서 말한다. 예를 들어 코끼리가 뾰족한 끝을 가진 커다란 창과 같다고 주장하는 장님의 말을 들은 사람이, “아니, 도대체 당신은 뭘 경험한 거요? 코끼리는 둥그렇고 아주 큰 나무와 같소.”라고 주장한다면 이 둘은 계속 무엇이 맞는지를 놓고 대립하게 될 것이다. 이들의 대립은 누가 맞고 누가 틀린지를 두고 옥신각신하는 것이다.
반면에 인지적 공감은 서로의 경험이 다를 수 있으므로 상대의 경험을 인정하는 데서부터 이야기를 풀어나가려는 것이다. 예를 들어 “당신 말을 들어보니 코끼리가 그렇게 뾰족한 끝을 가진 창과 같다는 말이 이해가 되네요.” “제가 당신처럼 코끼리의 특정 부위를 만졌더라도 그렇게 말할 수 있겠네요”라고 말하면서 상대의 경험을 인정하는 것이 인지적 공감이다.
필자에게 부부 상담을 위해서 찾아온 부부 중에 간혹 “선생님 저희 말을 들어보시고, 누가 맞는지 판단 좀 해주세요.”라고 말하는 부부가 있다. 이때 필자는 이렇게 대답한다. “혹시 여기 어디인지 알고 오셨나요? 여기는 법원이 아닙니다. 저는 두 분의 말을 듣고 누구는 맞고, 누구는 틀리는지를 판단해주는 판사가 아닙니다. 제 역할은 두 분이 서로의 입장을 충분히 들을 수 있도록 도와드려서, 상대의 경험과 입장에서 동의는 안 될 지라도 서로의 입장을 역지사지로 이해하실 수 있도록 도와드리는 것입니다.”
부부가 나의 생각은 맞고 배우자의 생각은 틀리다는 전제로 소통하면 협의가 안 되지만, 상대와 나의 생각이 다른 것이라는 생각으로 소통하면 협의가 된다. 인지적 공감은 서로의 경험과 생각이 다름을 인정하고 좁혀나가는 과정이다.
부모와 자녀의 관계에서도 마찬가지로 적용할 수 있다. 아이만의 경험에서 생겨난 아이의 생각이나 감정을 부모가 경청하고 아이가 하는 무슨 말을 하는지 이해하게 되는 것이 부모의 인지적 공감이다. 다시 말하지만 이때 부모가 자녀의 생각이나 감정에 반드시 동의할 필요는 없다.
인지적 공감을 잘하기 위해서 가장 중요한 과정은 상대의 입장을 인정하고 이해하는 것이다. 어떻게 그렇게 할 수 있을까? 상대의 경험을 충분히 알아보거나 들어봐야 한다. 부모가 아이를 인지적으로 잘 공감해주기 위해서는 아이가 경험한 아이만의 세계를 충분히 살펴보고, 들어주는 과정이 필요하다. 그리고 난 다음에는 “네 말을 들어보니 네 입장에서는 그렇게 생각하고, 느낄 수 있겠구나”라고 말해주자. 이것이 인지적으로 공감해주는 것이다.
한 세미나에서 필자가 ‘인지적 공감’에 대해서 강의를 했다. 참가자 중에 한 명이, 자신은 그동안 몰랐는데, 오늘 강의를 들어보니 자신의 아버지가 그동안 자신과 형제들에게 ‘인지적 공감’을 너무 잘해주셨다고 했다. 아버지가 가끔씩 “혹시 너희를 그동안 서운했던 것 있으면 말해보거라”라고 하시면 할 말 있는 자녀가 말을 쭉 하고 아버지는 끝까지 들어주셨다.
자녀의 말을 다 들은 다음에는, “네가 그런 일이 있었구나. 무슨 말인지 알겠다. 아빠가 거기에 대해서 미안하다”라며 풀어주시곤 했다고 한다. 그래서인지 자신의 부부생활은 물론 원 가족 식구들이 모두 관계가 좋다고 말했다. 필자는 이 분에게 “아버지가 정말 잘해주셨네요. 아버지 통해서 복을 많이 받으셨어요”라고 말해주었다.
한편 아이의 연령에 따라서 인지적 공감 능력에는 차이가 있다는 사실을 알고 아이의 반응을 이해하자. 5살 이전의 아이에게는 인지적 공감 능력이 부족할 수 있다. 액체보존실험에서 4살 현미에게 엄마가 말한다. “그러면 엄마가 여기다가 부어볼게. 어떤 게 더 많은지 얘기해 줘야 돼?” 몇 번이고 같은 양의 물이라는 걸 확인시켜준 후 바로 눈앞에서 그릇만을 바꾼 다음 물의 양을 물어본다.
엄마가 묻는다. “현미야, 그릇이 달라졌지? 그럼 엄마가 문제 내 볼게. 어떤 게 더 많은 것 같아? 많은 것 가져가라고 하면 어떤 거 가져갈 거야?” 그러자 아이는 좁고 긴 통의 물을 선택한다. 물이 더 많이 들어간 것처럼 보이기 때문이다. 같은 나이의 다른 아이들도 똑같은 선택을 한다. 즉 자기가 바라보는 그릇의 차이만을 믿어버리고, 그릇의 모양이 달라도 그 안의 양은 동일하다는 것을 모른다.
하지만 7살만 되도 더 이상 속지 않는다. 아이들은 그릇의 모양을 아무리 다르게 해도 물의 양은 동일하다는 사실을 알기 때문이다. 상대의 관점에서 인정하고 이해하는 인지적 공감이 가능해지는 나이가 된 것이다.
[남동우 소장의 저서 '부모의 말 한마디 행동 하나가 아이를 바꾼다' 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