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화에는 규칙이 필요하다
“막상 시간이 있어 같이 있게 돼도 딱히 할 말이 없어요.”(어느 직장인). “아빠가 좋아하셔서, 초등학교 때 가족이 캠핑을 자주 다녔어요. 캠핑은 재미있었지만 가족 간에 대화는 별로 없었어요.”(부모가 서먹한 20살 청년).
김대현 한국가정문화연구소 소장은 “대화하는 법을 배우지 못한 채 부모가 된 이들은 자녀들과 대화하면서 자신도 모르게 상처를 대물림하게 된다”고 말한다. 가족 간의 소통은 자신이 부모나 양육자로부터 경험한 소통방식을 자식이나 배우자에게 다시 반복하는 것이다. 부모 자신이 경험한 소통 방식이 비난, 평가, 짐작 같이 ‘안전하지 못한’ 것이었다면 자녀와 의 소통 과정에서 습관적으로 그런 방식이 나올 것이고, 대화는 어려울 수밖에 없다. 대화는 어떻게 해야 할까? 아니 그전에 대화한다는 것은 무엇을 말하는 것일까?
멀리서 두 사람이 치고받고 있다. 싸우는 것처럼 보인다. 이들은 싸우는 걸까? 아니면 권투를 하는 걸까? 이들이 싸우는 것인지 스포츠인 권투를 하는 것인지를 가늠하는 기준은 권투 글러브나 마우스의 착용여부가 아니다. 그들의 ‘룰’을 지키면서 치고받는지 여부다. 아무리 링 위에서 권투 글러브를 끼고 치고받는다고 해도 ‘룰’없이 서로 욕을 하고 발길질이나 꼬집기를 한다면 그냥 싸움이다.
반면에 권투의 기본적인 ‘룰’을 지키면서 심판 입회하에 경기를 치른다면 그것은 권투라는 스포츠 경기를 하는 것이다. 스포츠와 비 스포츠의 차이는 ‘룰’과 그것을 지키는 ‘스포츠맨 십’의 유무로 알 수 있다. 즉 스포츠를 즐기기 위해서는 해당 스포츠의 ’룰‘에 따라 공정하고 안전하게 게임에 임해야만 한다.
사람과 사람 간의 의사소통도 ‘룰’ 없이 감정적으로 치고받으면 싸움이고, ‘룰’을 지키면서 안전하게 주고받으면 대화다. 대화는 ‘룰’을 가지고 안전하게 주고받는 스포츠다. 가족 간에 소통이 안 되는 이유는 대화라는 스포츠를 즐기기 위한 ‘룰’이 없거나, 있다고 해도 잘 지키지 않기 때문이다.
대화라는 스포츠를 즐기기 위해서는 ‘룰’없이 감정적이고 습관적으로 주고받았던 소통 방식을 개선해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대화를 위한 ‘룰’과 그것을 반복하는 연습이 필요하다.
대화의 ‘룰’은 ‘한 사람이 안전하게 말 할 때 다른 한 사람은 경청해서 들어주는 것’이다. 말하는 사람은, 주어를 ‘너’가 아니라 ‘나’로 시작하는 ‘나’ 전달법을 사용해서 안전하게 말한다. (‘나’전달법에 관해서는 다음 장에서 다룬다). 더불어 부모가 대화를 독점하지 않고, 아이를 비난하거나 아이의 친구와 비교하지 않고, 가급적 한 번에 한 가지 주제에 대해서만 말한다.
듣는 사람은 말하는 사람의 말을 경청한다. 경청한다는 것이 무엇일까? 그냥 듣기(Hearing)과 경청(Listening)은 다르다. 히어링(hearing)은 ‘그냥 들리니까 듣는 것’이라면 리스닝(listeing)은 ‘상대가 하는 말을 잘 알아듣고 이해하는 것’으로 이것이 ‘경청’이다. 우리의 일상 생활 중에 경청(Listening)한다고 말하지만 실은 그냥 듣는(Hearing) 경우가 얼마나 많은가? “나 지금 잘 듣고 있어”라고 말하지만, 실은 상대가 말하는 동안 잘 듣지 않고 다른 생각을 한다면, 상대의 소리를 듣는 것(Hearing)일 뿐, 상대가 하는 말을 이해하면서 듣는 경청(Listening)은 아니다.
오래전 얘기다. 필자가 유학준비를 위해서 서점에 영어책을 사러 갔었다. 그 때 (정확하게 기억나진 않지만) ’영어의 히어링(hearing) 실력이 좋아지는 법’이라는 책 제목을 보았다. 필자는 이 책의 제목을 보고 눈을 의심했다. 히어링(hearing)은 청력을 의미하는 영어 단어로서 이 책의 제목대로라면 ‘청력을 높이는 데 도움을 주는 책‘이라는 의미가 되기 때문이다. 영어로 표현된 음성을 잘 이해하고 해석할 수 있는 능력이라면 리스닝(listening)이라고 써야 맞다. 그럼으로 이 책의 제목은 ’영어 리스닝(listening) 실력이 좋아지는 법‘이라고 해야 맞았을 것이다.
경청의 과정에서 중요한 것은 한 사람이 말할 때 듣는 사람은 말하는 사람의 말을 중간에 끊지 않고 끝까지 잘 들어주는 것이다. 다음 예를 보자.
진영: “아빠, 오늘 학교에서 친구랑 싸웠는데요…”
아빠: “뭐? 친구랑 왜 싸워?”
진영: “지우개를 빌려달라고 했는데, 안 빌려줬거든요. 아직도 그때 일을 생각하면 정말 속상해요. 글쎄, 진영이가 내 지우개를 조각조각 잘라 놓은 거 있죠?”
아빠: “그깟 지우개 좀 빌려주지, 왜 안 빌려 줬어? 그러니까 친구가 화났겠지.”
진영: (아빠는 내 얘기를 끝까지 듣지도 않고 나만 나무랐어. 진영이가 저번에 내 지우개를 망가뜨린 것도 모르면서.)
아빠: “내일 학교 가서 먼저 사과해. 알았지? 왜 대답이 없어?”
진영: “네.” (아빠가 윽박지르는 바람에 억지로 대답했어. 하지만 난 사과하지 않을 거야. 진영이는 뭐든지 빌려 가면 잃어버리거나 망가뜨리거든. 아빠는 잘 알지도 못하면서. 아빠는 내 마음 알까?)
이 예에서 아빠와 아이의 대화가 잘 안 되고 있다. 왜 그럴까? 아이의 말을 아빠가 중간에 끊고는 아이 친구의 편을 들면서 아이를 나무랐기 때문이다. 아빠와 아이의 이 ‘주고받기’가 대화가 되기 위해서는 아이가 말할 때, 아빠가 아이의 말을 끝까지 들어주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혹시 아이의 말이 너무 길어져서 끝까지 듣기가 어려우면 손짓 등으로 말을 좀 멈춰달라고 요청한다. 그것이 통하지 않는다면 “지금까지 한 말 내가 잘 들었는지 말해 볼까?”라고 말하면서 우회적으로 아이나 상대의 말에 쉼표를 찍는다.
‘룰’에 따라 반복적으로 연습하는 것이 중요하다
대화를 잘하기 위해서는 ‘룰’에 따라서 반복적으로 연습해야 한다. 대화는 ‘주고받는 것’이다. 마치 탁구를 칠 때 한쪽이 공을 치면 다른 쪽은 그 공을 잘 받아서 치는 것과 다르지 않다. 부모와 아이가 둘 다 말하거나, 둘 다 말하지 않는 다면 대화가 아니다. 대화가 ‘룰’에 따라서 성공적으로 반복되기 위해서는 안전하게 말하고, 경청해서 들어주는 편안하며 수용 받는 분위기가 필요하다.
부모가 말을 할 때, 혼자만 오래 말을 하면서 대화를 독점하고, 아이를 비난하거나 아이의 친구와 비교한다면 아이는 주눅이 들거나 마음에 상처를 받고 마음의 문을 닫을 수 있다. 부모가 아이의 말을 어떻게 들어주느냐에 따라서 아이는 말하는 것에 자신감을 얻고 신이 나서 더 말하기도 하고, 주눅이 들거나 상처를 받고 마음의 문을 닫을 수도 있다. 아이가 말을 더듬는 이유 중 하나는 누군가에게 평가받은 기억에 대한 두려움과 불안감이다.
미국에서는 말을 더듬는 아이들을 치유하는 방법 중 하나로 도서관에서 아이의 이야기 들어 주는 개를 활용하는 경우가 있다. 개에게 책을 읽어주면 개는 않아서 아이의 눈을 꼬박 쳐다보며 들어준다. 이때 개가 아이의 말을 이해하는 것은 아니지만, 말을 더듬는 아이는 자신을 평가하지 않고 누군가에게(여기서는 도서관의 개) 책을 끝까지 읽어주거나 말을 해보는 경험은 아이에게 무조건 적으로 수용 받았다는 느낌과 자신감을 갖게 해준다. 이처럼 부모도 아이 말을 들어줄 때는 비판하거나 평가하려는 태도를 내려놓고 들어주는 것이 필요하다.
부모와 자녀가 대화를 주고받는 과정에서, 자녀의 대답이 부모의 의견과 다를 경우, 부모가 그것을 수용하기 어려워하는 경우가 종종 있다. 이런 부모들에게 하버드대 마이클 샌더스 교수가 자신의 양육 경험을 토대로 전하는 다음의 조언이 도움이 될 것 같다.
“아이의 생각이 정확하게 맞지 않더라도 틀렸다고 바로 수정하고, 다음 단계로 넘어가는 건 좋지 않습니다. 경청과 인내심의 미덕은 좋은 교사뿐만 아니라 좋은 부모가 되기 위해서도 필요합니다. 아이의 의견이 다른 사람의 의견과 반드시 일치해야 할 이유가 있을까요? 나와 다른 의견이라도 자녀의 이야기를 귀담아 끝까지 들어주세요. 그럼, 아이는 자신의 생각을 논리적으로 말하는 힘을 기를 수 있게 됩니다. 물론 이를 실제로 적용하는 건 어려울 수 있죠(웃음). 그래서 좋은 부모가 되는 것은 우리 삶에서 가장 어려운 과제일 수 있습니다.”
한편 대화할 때는 상호간에 눈 맞춤이 아주 중요하다. 상대방과 얘기할 때 눈을 마주치는 시간은 평균 4초라고 한다. 상대의 눈을 마주하기 힘들다면 2초는 눈을 보고, 2초는 미간을 보면서 눈을 바라보는 시간을 조금씩 늘려가자. 그리고 눈을 마주하는 게 자연스러워졌을 때, 상대의 말에 자연스런 눈짓으로 반응을 하면서 공감을 표시하면 속 깊은 대화를 이끌어갈 수 있다.
요약하자면, 대화는 스포츠다. 스포츠에는 ‘룰’이 필요하다. 대화라는 스포츠의 ‘룰’은 ‘한 사람이 말할 때 다른 사람은 경청하는 것’이다. 말하는 사람은 ‘나’전달법을 사용해서 안전하게 말하고, 듣는 사람은 말하는 사람의 말을 중간에 끊지 않고 상대의 말을 잘 이해하면서 듣는데 이것이 경청이다. 경청의 과정에는 반영, 인지적 공감, 정서적 공감, 질문, 제안 기술이 필요하다. 필자는 이러한 소통방법을 ‘안전 공감 대화법’이라고 칭한다. 이것에 대해서는 다음 장에서부터 차례차례 다룰 것이다.
[남동우 소장의 저서 '부모의 말 한마디 행동 하나가 아이를 바꾼다' 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