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적응 정도가 심한 아이에게는 풀리지 않은 ‘핵심사건’이 있다
4살 된 여자아이가 엄마 앞에서 똥을 싼 기저귀를 집어던지고, 퇴근 한 아빠의 뺨을 때리는가 하면, 자고 있는 아빠의 얼굴에 대고 오줌을 쌌다. 이런 문제를 보이는 아이를 데리고 필자를 찾아온 부모는 지극히 평범하고 합리적인 사람들이었다. 무엇이 아이에게 스트레스가 되어서 아이가 이런 행동을 하는지 도무지 찾기가 어려울 정도였다.
아이의 부모는 필자에게 에피소드를 하나 들려주었다. 한번은 부모의 친인척이 돌아가셔서 부모가 아이와 함께 장례식장에 갔다고 한다. 장례식을 마치고 식당에서 아이는 젓가락으로 눈을 가리고 있었다. 아이가 젓가락으로 눈을 가리며 보기 싫어했던 것은 장례식장에 찾아온 수많은 남자들, 일명 ‘아저씨들’이었다. 아이는 왜 아저씨들을 보지 않으려고 젓가락으로 눈을 가렸을까?
부모와 아이는 아파트 고층에 산다. 아이는 한창 뛰어 놀 나이다 보니 낮이고 밤이고 자주 집에서 뛴다. 그러다 보니 층간 소음이 발생했다. 아이가 뛸 때 몇 번 아래층에서 올라와 주의를 주곤 했다. 부모는 아이가 “뛰지 말라”는 말을 듣지 않자, “너 또 뛰면 아래층에서 아저씨가 올라와서 너 혼내준댔어”라고 말했다. 이 말을 들은 아이는 뛰는 행동이 많이 개선되었다. 하지만 이때부터 아이가 엄마에게 똥 기저귀를 던지고, 아빠의 뺨을 때리는 행동이 시작되었다. 그 이유는 무엇일까?
아이는 평소에 자신에게 그렇게 잘해주던 부모가 아래층에서 올라온다는 그 ‘아저씨’로부터 자신을 보호하지 않을 수 있다는 생각에 충격을 받은 것이다. 아이에게 부모는 더 이상 안심하고 믿고 기댈 수 있는 사람들이 아니었다. 아이는 불안했고, 부모에 대한 항의의 표시로 ‘똥 기저귀를 던지고’ ‘아빠의 뺨을 때린’ 것이다.
필자는 부모에게 아이가 그런 부적응 행동을 한 이유에 대해서 설명해준 다음, 아이에게 진실을 말하고 사과하라고 제안했다. 부모는 필자에의 제안에 따라 진실을 말하고 아이에게 사과했다. 즉 아래층에서 아저씨가 올라온다는 말은 거짓말이었고(그 동안 아래층에서 올라온 사람은 아주머니였다), 만약 올라온다고 해도 그 아저씨가 아이를 혼내도록 부모가 놔두지 않을 거라고 말했다.
한 주 뒤 가족이 다시 상담에 왔다. 엄마가 말했다. “아이가 이제 제 앞에서는 부적절한 행동을 하지 않는데, 남편에게 뺨을 때리는 행동은 달라지질 않았어요. 왜 그럴까요?”
이 말을 듣고, 필자가 남편에게 물었다. “아이에게 진심으로 사과하셨나요?” 남편이 대답했다. “진심은 아니고… 그냥 사과했죠.” 필자가 말했다. “아이들은 부모의 사과가 말뿐인지 진심인지 다 압니다.” 남편은 그날 집에 가서 아이에게 눈물을 글썽이며 진심으로 사과했고, 아이는 더 이상 아빠의 뺨을 때리거나 오줌을 싸는 부적응 행동을 하지 않았다.
수년 뒤 아이의 부모로부터 연락이 왔다. 아이가 초등학교 2학년이 되었는데, 학교생활에 적응을 아주 잘한다는 것이었다. 글짓기에서 상을 받고, 선생님들의 칭찬을 많이 받는다고 했다. 만약 그때 부모가 진실을 밝히고 진심으로 사과하지 않았다면 어떻게 되었을까? 아이는 부모의 사랑을 오해하며 지금도 또 다른 부적응 행동을 이어가고 있을지 모른다.
중학교 3학년인 남자 아이가 부모와 함께 상담실을 찾아왔다. 아이는 우울증과 만성 무기력증을 앓고 있었다. 최근에는 다리에서 뛰어내리는 자살시도를 했다가 경찰에 의해서 구조되었다. 그 전에는 손목을 칼로 여러 번 그었는데, 죽으려고 그런 것이 아니라, 피를 보면 불안하고 답답했던 기분이 빠르게 좋아지기 때문이라고 했다.
아이는 부모와 함께 있는 것을 불편해 해서 개인 상담을 통해서 아이의 얘기를 먼저 들어보았다. 아이의 우울과 불안은 초등학교 5학년 때부터 시작되었다. 4학년 말에 60만~70만 원 하는 최신형 드론을 사고 싶어서 돈을 모았는데, 그 사실을 알게 된 아빠가 자신을 “집요하게” 설득해서 자전거를 사게 했다. 아빠의 설득이유는 드론이 초등학생인 자신이 구입하기에는 너무 비싸고 금방 실증이 날 것이기 때문에 15만 원 정도 하는 실용적인 자전거를 사고 남는 돈은 저축하게끔 했다.
아들은 아빠의 설득에 따라 자전거를 샀지만, 그 뒤로 무기력증에 빠졌다. 아무것도 하고 싶은 것이 없게 되었다. 한번 꺽 인 열정은 다시 살아나지 않았다. 몇 년 뒤 아빠에게 용기를 내서 자신은 그때 드론이 꼭 사고 싶었는데, 아빠의 지속적인 설득에 꺽 여서 자전거를 산 게 너무 싫었다고 말했다. 아들은 아빠에게 사과를 받고 싶었던 것이다.
하지만 이때도 아빠는, “그래도 아빠 말대로 했으니까 네가 지금까지도 탈 수 있는 자전거를 가지고 있는 게 아니냐.” “만약 그때 드론을 샀더라면 네가 지금까지 그걸 멀쩡하게 간수 할 수 있었겠어?” 하면서 아빠 자신의 선택이 옳았다는 것을 다시금 강조했다. 아들은 이 날 아빠의 말을 들은 이후 자신의 ‘추락하는 방황’이 시작되었다고 말했다.
그런데 이 사건 하나만으로 아이의 방황이 이어진 것은 아니다. 부모는 아이가 어려서부터 가족이 함께하는 시간이 부족했고, 대화는 거의 없었으며, 주로 부모가 자녀에게 ‘통보’하는 소통방식이 쭉 이어져 왔다고 말했다. 즉 부모 중 한명이나 부모 모두 결정한 사항을 아이에게 일방적으로 통보했고, 아이가 그것을 따르지 않으면 아빠든 엄마든 아이를 설득해서 결국 부모의 뜻을 관철시켰다.
엄마는 그간의 부족했던 소통과 일방적인 훈육 스타일을 반성하는 마음으로 아이에게 사과했고, 아이가 받아들였다. 한편 아빠는 아이가 초등학교 때 자신이 아이를 설득해서 자전거를 사게 한 것은 적절한 것이었고, 만약 그때부터 아이의 문제가 시작되었다면 그것은 아이의 문제지 자신의 문제가 아니라고 말했다.
또한 자신은 아들을 사랑해서 가장 좋은 것을 주려고 노력했으며, 아들과의 소통방식에도 문제가 없다고 말했다. 아들을 설득해서 자전거를 사게 한 것은 아들을 위해 한 것이고, 그일 이후에 아이가 문제 행동을 보이는 것은 순전히 아이가 가진 문제 때문이라고 했다. 필자에게도 아들을 사랑하는 아버지의 마음이 느껴졌다.
하지만 문제는 아버지가 아들에게 사랑을 전달하는 방법이었다. 아버지에게 ‘넘치는 사랑’이 있어도, 아들을 설득하고 강요하는 방식으로 ‘들이 붓는 식’이라면 아이는 불쾌하고 숨이 막혀서 죽고 싶을 것이다. 그것은 아이에게 필요한 사랑이 아니었다. 아이에게 필요한 것은 아빠가 자신만의 세계와 경험을 인정하고 사과해주는 것이었다.
하지만 아빠 자신이 잘못했다는 생각이 없는데, 자칫 아이의 변화를 위해서 ‘연기’하듯 아들에게 사과하면 오히려 역효과가 날 것이 우려되었다. 그래서 상담사가 아빠에게 제시한 것은 아빠가 아이의 경험을 ‘인정’만 하는 것이었다. 아빠는 상담사의 제안을 받아들였다.
상담실에서 아빠가 아들이 서로 마주 앉았다. 아이가 아빠의 얼굴을 마주 보려 하지 않았기 때문에 서로 거리를 두었다. 아빠가 아이에게 말했다.
아빠: 형준아, 네가 초등학교 때 드론 사고 싶었는데, 아빠가 설득해서 자전거를 산 게 너한테 스트레스가 컸다고 들었다.(반영) 아빠가 생각해보니 네 입장에서 그게 스트레스가 되었을 것 같다. 네가 모처럼 하고 싶은 게 생겨서 용돈을 모아서 사려고 했는데, 아빠가 설득해서 결국은 못 사게 되니까 네가 맥이 빠지고 실망했을 것 같다.(인정) 맞니?”
아들: 맞아요.
아빠가 이렇게 아이의 입장에서 생각하고 ‘인정’해주니까, 아이의 화색이 바뀌었다. 아이에게 소감을 물어보니, 아빠가 자신의 입장에서 인정해주시니까, 자신의 마음에서 묵어있던 ‘억울함’같은 것이 빠져 나가는 기분을 느껴서 시원했다고 말했다. 이렇게 아이의 입장에서 인정해주는 것이 인지적 공감이다.
부모 중에는 자녀에게 쉽게, 건성으로 사과하기 때문에 오히려 문제가 해결되지 않고 만성화되곤 한다. 성의 없는 사과 보다는, 설령 사과를 하지 않더라도 아이의 말을 잘 듣고, 아이의 입장에서 알아주는 인지적 공감부터 시작해 보자. 분명 아이의 마음이 풀리고 문제가 해결되는 효과가 있을 것이다.
사과는 과거를 풀고, 용서는 미래를 연다
‘사과는 과거를 풀고, 용서는 미래를 연다’는 말은 필자가 다니는 교회에서 매년 크리스마스가 오면 진행하는 행사의 표어다. 한 해 동안 미안했던 사람을 찾아가서 사과를 선물하면서 사과하고, 용서가 필요한 사람을 용서하자는 취지다. 사과와 용서는 분명 어려운 일이지만, 그것을 실천했을 때는 결과에 상관없이 분명히 좋은 효과가 있다. 최소한 사과하고 용서하는 내가 변했기 때문이다.
부모는 아들이 공부를 잘 하는 것은 흐뭇했지만, 대인관계를 잘하지 못하는 것을 안타깝게 여겨서 상담의 도움을 받고자 찾아왔다. 중학생 아들의 성적은 학교에서 최상위권 이었지만 아들의 정서는 매우 불안정했고, 최근 검사한 심리평가에서 우울증이 심하다는 결과를 받았다. 아들은 공부는 잘했지만 다른 친구들 앞에서 발표를 하거나 함께 팀으로 수행해야 하는 과제에 대해서는 극도의 불안을 호소하며 참여를 거부했다.
먼저 아들을 일대일로 상담한 결과 아들에게 핵심적인 ‘트라우마’가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아들이 초등학교 때 부모님 돈 10만 원을 훔쳤다가 아빠에게 걸렸다. 아빠는 크게 화를 내며 엄마와 누나가 보는 앞에서 “다시는 돈을 훔치지 못하게 하겠다”며 칼을 들고 아들의 손을 자르는 시늉을 했다. 이것은 아들과 가족 모두에게 큰 충격과 상처가 되었다. 하지만 아빠는 그날 이후 그 사건을 잊고 지냈다.
상담 과정에서 아빠는 자신의 과거 행동이 아들과 그 때 그 장면을 목격한 딸과 아내 모두에게 충격이었다는 것을 인정하고, 사과했다. 특히 당사자인 아들과는 일대일로 대화하는 시간을 가졌다.
아빠: 승수야, 너 초등학교 때 네가 돈 훔쳤을 때 아빠가 칼로 네 손목을 자른다고 위협했던 거 큰 충격이었지? 맞니?
아들: 네, 맞아요.
아빠: 그래, 아빠가 한번 네 입장에서 생각해보니까, 네가 돈 10만 원 훔친 건 잘못이지만 아무리 그래도 아비가 자식 손목을 자르겠다고 칼로 위협했으니까 네가 무섭고 충격을 받아서 말문이 막혔을 것 같다. 맞니?
아들: 네, 맞아요. 아빠.
아빠: 아빠가 잘못했다. 미안하다. 아빠 사과 받아줄 수 있니?
아들: 네.
아빠 그래. 고맙다.
이날 아들은 모처럼 화색이 돌아온 얼굴로, 자신은 이제 좀 풀렸으니 부모님이 덜 싸우면 좋겠다는 말로 상담을 마무리를 했다.
사과는 영어로 Sorry다. 이 단어의 어원은 Sore로 아픔 혹은 상처라는 단어에서 왔다. 즉 사과는 상대와 나의 아픔과 상처를 인정하고 어루만지는 것이다. 그러니까 부모가 진심으로 자녀의 마음을 인정하고 사과하는 것은 아이의 마음을 치료하는 아주 좋은 연고를 발라주는 것과 같다.
[남동우 소장의 저서 '부모의 말 한마디 행동 하나가 아이를 바꾼다' 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