뇌의 문제 아니면 스트레스가 부적응의 주된 이유다
옥상에서 2년째 내려오지 않는 개가 있었다. 주인은 최근에 다리에 부상을 입어서 옥상까지 올라가서 개에게 밥을 주고 주변을 청소해주기가 어려웠다. 개가 옥상에서 내려와서 생활해야 주인이 편할 수 있기 때문에, 주인은 개를 옥상에서 내려오게 하려고 노력해보았지만 허사였다. 주인은 자신의 노력으로는 안 되겠다 싶어서 사방팔방 도움을 구해 던 중에 유명한 개 행동 교정 전문가의 도움을 받을 수 있게 되었다.
개에 관한 사연을 들은 전문가의 분석은 이랬다. 이 개는 옥상에서 태어난 이래로 한 번도 옥상을 떠난 적이 없다. 자신과 같이 태어난 형제 개들은 모두 입양 되었고, 엄마 개마저 옥상에 올라온 다람쥐를 쫓다가 옥상에서 떨어져 죽었다. 개에게는 옥상을 떠나면 형제 개들이나 엄마 개처럼 다시는 돌아오지 못한다는 공포가 있다. 예전에 사람들이 지구를 네모난 모양이라고 믿었을 때, 먼 바다로 나가면 폭포 같은 절벽에서 떨어져 죽을 까봐 멀리 항해를 떠나지 못했을 때의 두려움 같은 것이다. 그래서 주인이 아무리 잡아 당기로 안고 해서 데리고 내려오려고 불가능했던 것이다.
전문가는 문제해결을 위해서 먼저 어미의 체취가 남은 이불을 가져오게 했다. 어미의 체취는 그 개에게 가장 따뜻했던 기억과 연결되어 있다. 그리곤 개가 그 이불의 냄새를 맡으면서 조금씩 계단을 내려갈 수 있게 도와주었다. 전문가는 개를 끌어당기거나 밀지 않고, 개를 최대한 존중하는 자세를 취하면서 시간의 여유를 가지면서 천천히 움직였다. 이런 방식을 몇 번 반복했다. 마침내 몇 주후, 이 개는 전문가의 도움 없이도 계단 아래로 내려와서 생활할 수 있게 되었다.
이처럼 개가 부적응하는 데에는 사연이 있고, 보통 그 사연은 개의 뇌에 문제가 있거나 개가 받았던 스트레스가 적절하게 풀리지 않았기 때문이다. 아이가 부적응하는 이유도 마찬가지다. 아이의 뇌에 문제가 있기 때문이거나, 아이가 받은 스트레스가 적절하게 해소되지 못했기 때문이다(혹은 둘 다).
뇌에 문제가 있는 경우는, 뇌에 손상을 입는 사고를 당했거나, 발달장애 혹은 자폐인 경우다. 이 경우 보통 언어능력이나 사회성 혹은 두 가지 기능 모두에 문제가 생겨서 적응이 어렵다. 뇌의 문제가 아니라면 아이가 부적응하는 원인은 모두 스트레스 때문이다. 아이가 스트레스를 받는 주요한 이유는 애정결핍이나 안전하지 못한 환경(예. 부모의 불화, 부모의 일관성이 부족한 훈육이나 폭력)인 경우가 대부분이다. 다음은 아이가 부적응하는 사례에 따른 스트레스의 원인을 살펴본 것이다.
욕구가 채워지지 않을 때 아이는 부적응 한다
사례 1
물건을 훔치는 아이의 이면에는 결핍과 불안이라는 스트레스가 있다. 아이가 어린이집에나 친구 집에서 물건을 가져온 연령이 만 5세 이하라면 훔친다는 개념 없이 실수로 혹은 그냥 가져왔을 수 있다. 하지만 만 5세 이상의 아이가 다른 곳에서 물건을 가져왔다면, 그 원인은 관심이나 애정 같은 욕구의 결핍이거나 스트레스를 받아 불안한 마음을 진정시키기 위한 일종의 ‘진통제’가 필요했기 때문이다.
서진이 부모님은 맞벌이를 하시기 때문에 서진이는 낮에 어린이 집에서 있다가 부모가 저녁에 퇴근하면서 아이를 데리고 집에 온다. 서진이가 유치원에서 장남감을 가져왔다고 선생님의 전화를 받았을 때 엄마는 회사를 조퇴하고 아이와 시간을 보냈다. 이런 일이 세 번까지 반복되자 엄마는 서진이에게 화를 내면서 경찰서로 가자고 했다. 아이는 놀라고 무서워서 경기를 하며 뒤로 넘어졌다. 엄마는 아이가 잘못 될까봐 걱정이 되었고, 아이의 ‘훔치는’ 행동도 개선시켜보고자 부모와 아이가 함께 상담센터에 찾아왔다.
첫 상담에서 상담사가 서진이에게 먼저 물었다. “내일 아침 나에게 기적에 일어난다면, 어떤 일이 생기면 좋겠니?” 서진이가 대답했다. “복권에 당첨되는 거요.” “얼마짜리?” “20억이요” “그 돈이 생기면 뭐하고 싶니?” “그 돈 생기면 엄마 아빠가 회사 안 나가도 돼요.” 서진이의 대답은 아이가 그간 결핍된 것이 무엇이었는지를 말해주었다. 서진이의 대답을 들은 부모는 놀라면서도 이제 서진이의 마음을 조금은 이해할 수 있다는 표정이었다.
서진이가 처음 어린이집에서 물건을 가져온 것은 우연이었을 수 있다. 친구들과 장난감을 가지고 놀다가 너무 재미있어서 그냥 주머니에 넣고 집에 왔을 수도 있다. 그런데 장난감을 가지고 온 날, 평소에는 낮에 볼 수 없던 엄마를 만나서 시간을 보내는 경험을 하게 되었다. 서진이가 두 번째 그리고 세 번째 어린이 집에서 장난감을 가지고 온 것은 우연이 아니다. 서진이 에게는 어린이 집에서 몰래 가지고 오는 장난감이 낮 시간에도 엄마를 만날 수 있게 해주는 ‘티켓’이었던 것이다.
이 사례의 경우 어머니가 남편과 협의 하에 회사를 휴직하기로 결정했다. 이 결정이 아이의 문제를 해결하는 정답이라고 말할 수는 없다. 가정 여건에 맞게 부모가 협의해서 내리는 결정이 최선일 것이다. 다만 아이의 잘못된 행동에 대해서는 ‘안 돼’라고 말해주는 것과 함께, 부모가 아이의 결핍을 채워주려는 노력이 문제를 해결하는 핵심인 것만 기억하자.
사례 2
만 5세 이후 아이가 거짓말을 하는 데에는 두 가지 이유가 있다. 첫 번째는 관심을 받기 위해서다. 이 시기는 아이는 거짓말이 잘못된 것인 줄 알면서도 자신을 드러내서 다른 사람의 관심을 받고 싶은 욕구에서 거짓말을 한다. 친구나 형제 사이에서 자신이 괜찮은 사람이라는 것을 인정받기 위해 자신의 소망을 마치 현실인 듯 이야기하곤 한다. 아이가 이렇게 거짓말은 하는 이면에는 아이가 부모와 어울릴 시간이 적거나 지루하게 혼자 노는 경우 타인의 관심을 끌기 위해서다.
두 번째 이유는 부모님께 사실대로 말했다가는 많이 혼날 것 같기 때문이다. 아이는 어른들이 생각하는 것보다 혼나는 것을 훨씬 무서워한다. 잘못을 했으면 혼이 나더라도 참아야 한다는 것은 순전히 혼내는 어른만의 생각일 수 있다. 아이는 자신을 지키기 위해서 그 상황을 피하는 것이 절박하다. 물론 혼날 일을 하지 않았다면 좋았겠지만 그렇지 않았을 때는 그저 혼나는 상황을 피하려고 둘러대거나 거짓말을 하는 것이다. 따라서 아이들이 거짓말을 하지 않고 바르게 말해도 부모가 심하게 혼내지 않는 분위기가 필요하다.
한편 만 5세 이하 유아는 거짓말이 아닌 거짓말을 한다. 만 3~5세 아이들은 발달상 흑백논리를 가지고 있는데다, 자기중심적인 상상력이 풍부한 시기여서 자신이 바라는 것을 강하게 표현하게 되는데 이것이 거짓말로 보일 수 있다. 부모가 "이거 물 누가 엎질렀어?”라고 물었을 때 “엄마가”나 “인형이”라고 천연덕스럽게 대답하는 아이에게 왜 거짓말을 했냐며 따져 물을 순 없다. 이것은 엄밀히 말해서 거짓말이 아니기 때문이다.
따라서 거짓말하는 아이를 혼만 낼 것이 아니라, 먼저 그 아이가 거짓말하는 연령을 고려하자. 5살이 넘은 아이의 거짓말이라면 그 이면의 사연, 즉 거짓말을 해서라도 관심을 받고 싶을 만큼 외롭던 것은 아닌지, 솔직하게 말했을 때 부모가 받아주지 않고 혼을 내서 무서웠기 때문은 아닌지를 먼저 점검하자.
사례 3
공격적인 아이는 스스로의 욕구를 언어로 표현하는 것이 어려운 것이다. 아이들은 종종 말로 표현하기 어려운 스트레스와 고통스러운 감정을 느끼고 긴장을 발산하기 위해 소리를 지르거나 말썽을 부리고 공격적인 행동을 한다. 아이가 비명을 지르는 것은 이런 스트레스를 완화하기 위한 한 방법이다. 부모들은 이것이 아이 나름의 스트레스해소법이자 도움을 청하는 외침일 줄을 모르고 야단을 친다.
아이가 공격적인 언행을 보일 때, 부모가 선택할 수 있는 반응에는 두 가지가 있다. ‘공격적’(Aggressive)이 되거나, 단호하게(Assertive) 대처하는 것이다. 아이가 공격적이 되는 이유는 부모가 자신의 감정을 조절하지 못하고 ‘욱’하고 화를 내거나, 아이의 존재나 인격을 비난하고 나무라기 때문이다.
반면에 단호하게 대처하는 것은 아이의 행동에 화가 나지만, 부모가 침착성을 유지하면서 차분하고 분명하게 아이의 잘못된 행동을 지적하면서, “안 돼”라고 말하는 것이다. 이때 아이를 감정적으로 혼내지 말고, 아이의 잘못된 행동에 대해서만 ‘안 돼’라며 지적하자. 이렇게 부모자신의 감정을 조절하면서 단호하게 대처하면 아이도 자신의 행동을 이전보다 더 잘 통제하고 조절할 수 있게 된다.
아이가 소리를 지르거나 공격적인 행동을 하는 다른 이유는 아이가 차분하게 말했을 때는 부모가 들어주지 않았기 때문이다. 엄마에게 막말을 하는 청소년이 있었다. 필자가 아이를 일대일로 만나서 사연을 물어보았다. 아이는 엄마가 자신에게 묻지 않고 자신의 방을 치우셔서 처음에서 “엄마, 제 방은 제가 알아서 치울 게요”라며, 피아노 건반의 ‘미’나 ‘파’ 정도의 음으로 말했다고 한다. 엄마도 자신의 말을 듣고, “알겠다.”고 약속을 하셨다. 하지만 엄마가 약속을 번번이 지키지 않으시니까 점점 ‘파솔라’로 목소리 톤이 높아지다가 나중에는 한 옥타브를 넘어서 음 이탈(막말)을 시작했다. 엄마가 그제 서야 아이의 말을 들으셨다. 그때부터 엄마에게 자신의 말을 전달하는데 ‘막말’을 사용하게 되었다고 했다.
이처럼 소리를 지르거나 공격적인 행동을 하는 아이 중에는 처음에는 부모에게 차분하게 말했으나 부모가 자신의 말을 경청하지 않고, 무시하는 경험을 지속적으로 했기 때문인 경우가 적지 않다. 아이가 갑자기 소리를 지르거나 물건을 집어던지는 등의 과격한 행동을 한다면 평소에 부모가 아이가 하는 말을 흘러 듣거나, 무시하지는 않았는지 곰곰이 떠올려 보자.
사례 4
고집이 센 아이는 부모로부터 존중받는 느낌을 받으면서 즐겁게 노는 경험이 부족하기 때문이다. 아이의 고집은 생존을 위한 방어기제다. 고집은 아이의 주도성 시기(3~5세)에 받은 마음의 상처에 대한 보호전략이다. 부모가 아이의 주도성을 존중해주지 않을 때, 아이는 ‘자기다움’에 대한 상처와 결핍을 갖게 되고, 더 이상 상처입지 않으려고 고집이라는 ‘갑옷’(방어기제)을 입는 것이다.
따라서 아이가 고집이 쎈 것을 보면 아이가 주도적으로 무엇을 하려는 행동을 부모가 지속적인 설득과 강압적인 태도로 무시한 것은 아니었는지 생각해보자. 이런 경우 아이의 행동이 아이 자신이나 타인에게 위험하거나 피해를 주는 것이 아니라면, 아이가 그 행동을 해볼 수 있도록 허용해주자. 더불어 아이가 부모와 즐거운 시간을 가질 수 있도록 배려한다면 아이는 점점 고집이라는 ‘갑옷’이 필요하지 않게 될 것이다.
[남동우 소장의 저서 '부모의 말 한마디 행동 하나가 아이를 바꾼다' 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