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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사소통을 위한 최고의 기본은 안전감이다
하이브가족상담센터 조회수:552
2021-10-21 16:07:14

인간의 의사소통 방식 세 가지는 침묵, 폭력, 대화

 

2006년에 방영되어 큰 인기를 끌었던 드라마 <궁>에서 상궁이 왕자에게 이렇게 말했다. “왕자님, 궁궐 생활의 9할(90%)은 언어생활입니다.” 여기서 ‘언어생활’은 왕으로서의 품위와 격에 맞는 언어를 말한다. ‘언어의 품격’이 곧 그 ‘사람의 품격’인 것이다. 이것을 결정하는 가장 중요한 요인 중 하나는 아이가 지속적으로 노출된 언어 환경이다. 아이가 평소에 자주 경험했던 언어 환경이 아이의 언어생활을 좌우하기 때문이다. 다음은 필자가 EBS 교육방송에서 보았던 장면중의 일부다. 한 그룹의 아이들에게는 “미안해.” “괞찮니?” “고마워.” “좋아.” 같은 공감의 언어를 들려주고, 다른 그룹의 아이들에게는 “야!” “짜증나게!” “열 받아.” “신경질 나.” 같은 분노의 언어를 들려주었다. 그 다음에 이 아이가 복도를 걸어 갈 때 실험을 위해 연기하는 아이가 뛰어가다가 이 아이의 어깨를 일부러 부딪친다. 이 때 아이의 반응은 아이가 미리 들었던 말에 따라서 달랐다. 공감 언어에 노출되었던 아이는, 부딪힌 아이에게 “괞찮니?” “미안해.” 같은 반응을 보인 반면에, 분노의 언어에 노출되었던 아이들은, “야!” “열 받네.” “짜증나게!” 같은 반응을 보였다.

이 실험을 통해서 볼 때 아이가 평소 가정에서 경험했던 언어가 학교생활에서 드러나고, 아이가 성장해서 부모가 되었을 때 다시 자녀에게 답습되는 것은 어쩌면 당연한 일이다. 아이들은 어떤 언어에 노출되는가? 『핵심적인 소통 도구(Crucial Conversations tools)』라는 책에서는 보면 사람은 침묵, 폭력, 혹은 대화라는 세 가지 방식의 언어로 의사소통을 한다. 이것들에 관해서 좀 더 알아보자. 

첫 번째는 ‘침묵’이다. ‘침묵’은 회피하기, 가만히 있기, 안 그런 척 하기, 다른 사람한테 말하기 같은 것이다. 예를 들어, 아이가 아빠가 무서워서 눈치보고 말을 못하는 것, 아이가 집에서는 별 말이 없어서 몰랐는데, 학교에서 왕따를 당하고 있었던 것, 아빠와 엄마가 냉전기라 서로 말을 하지 않는 것, 아내가 남편에 대한 불만을 아내의 친구에게 뒷 담화하는 것, 지친 표정으로 퇴근한 아빠가 방에 들어가서 아무 말도 하지 않는 것 등이 ‘침묵’이다.

둘째는 ‘폭력’이다. ‘폭력’에는 언어폭력과 신체폭력이 있다. 언어폭력은 비난하기, 막말하기, 욕하기, 반말로 이름 부르기, 소리 지르며 화내기 등이 있고, 신체폭력은 몸이나 물건을 사용해서 상대를 때리고 공격하는 것이다. 예를 들어, 엄마가 아이에게 소리를 지르며 화를 내는 것, 아빠가 엄마에게 욕을 하는 것, 아이가 학교에서 친구와 치고받으며 싸우는 것 등이다.

‘침묵’과 ‘폭력’은 동전의 양면처럼 함께 붙어 다닌다. 평소에는 하고 싶거나 해야 할 말을 잘 하지 못하고 참고 참다가(침묵), 더 이상 참을 수 없게 되면 ‘욱’하고 폭발(폭력)한다. 예를 들면, 상사 앞에서는 불만을 말하지 못하다가(침묵) 집에서 배우자나 자녀의 작은 실수에 ‘클릭(click)’ 되어서 터트리는 경우(폭력). 무서운 부모 앞에서는 말하지 못하다가(침묵) 어린이 집이나 학교에서 자기보다 약한 아이에게 소리를 지르거나 때리는 경우(폭력).

혹은 소리를 지르는(폭력) 배우자가 무서워서 대화하지 못하고 참다가(침묵) 폭발해서 싸우거나(폭력), 친구에게 배우자에 관한 ‘뒷담 화’하는 경우다. 특히 ‘뒷담 화’의 경우는 폭력을 행사하는 ‘가해자’와, 침묵하는 ‘피해자’ 그리고 피해자가 위로를 받기 위해서 찾아가는 ‘위로자’가 ‘삼각관계’를 이루게 되는데, 이 관계에는 불안함이 잠복하고 있다. ‘삼각관계’를 해결하는데는 ‘나 전달법’이 도움이 된다(7장 참조). 한편, ‘침묵’과 ‘폭력’은 동전의 앞뒷면처럼 번갈아 가면서 나타난다. 무엇 때문에 안전감을 느끼지 못하고 ‘침묵’하고나 ‘폭력’하는 것일까?

비난하고 비교하며 ‘욱’하기 때문이다. 이런 태도의 배경에는 조건화된 가치가 있다. 조건화된 가치는 문명화된 세계에게 보편적으로 나타나는 현상이다. 이것은 시대나 사회 상황에 따라서 무엇이 좋고, 무엇이 나쁜지, 혹은 무엇이 우월하고, 무엇은 열등한지를 조건화 시킨 것이다. 예를 들어 키가 큰 사람은 우월하고, 키가 작은 사람은 열등하다. 명문대를 나온 사람은 우월하고 그렇지 못한 사람은 우월하다. 돈이 많으면 우월하고 그렇지 않으면 열등하다. 외모가 예쁘면 우월하고, 그렇지 않으면 열등하다 등이다. 조건화된 가치는 어린 시절부터 사회화 과정의 일환으로 학습된다. 예를 들어, 미국의 한 어린이 집에 2,3살짜리 백인, 흑인, 아시아인 아기들이 한데 모여 있다. 실험자는 아이들에게 백인, 흑인, 아시아인 인형을 다양하게 섞어서 놀 수 있도록 주었다. 아기들은 인형의 인종을 구분하지 않고 선택해서 놀았다. 아이들은 인형의 인종에 대한 선입견이 없기 때문이다. 그런데, 같은 실험을 5살짜리 아이들에게 시행했을 때, 아이들은 자신의 인종에 상관없이 백인 바비 인형만을 선택했다. 5살 짜 리 아이들은 백인이 더 우월하다는 조건화된 가치를 부모의 말이나 미디어 등을 통해서 학습했고 그로인해서 인종에 대한 선입견이 생긴 것이다. 이러한 패턴은 우리나라의 남녀 불평등의 역사에서도 찾아볼 수 있다. ‘벙어리 3년, 귀머거리 3년’, ‘암탉이 울면 집안이 망 한다’는 말은 여성의 ‘침묵’을, ‘남자는 평생 세 번 울어야 한다’는 말은 남성의 침묵을 압박하고, 다양한 생각과 감정을 표현하는 자유를 ‘사치’로 여기게 만들었다. 또한 ‘여자와 북어는 3일에 한번 씩 패야한다’는 말은 남성의 어긋난 ‘폭력’을 정당화 했고, 분노와 폭력은 남성다운 감정이라는 거짓된 인식을 심겨졌었다.

조건화된 가치가 불합리한 규칙이 되어서 가정을 힘들게 하는 경우도 적지 않다. 부모가 청소년 자녀에 대해 상담하고 싶다며 찾아온 적이 있다. 정작 자녀는 오지 않았는데, 자녀는 은둔형 외톨이로 지난 일 년 간 방에서 두문불출했기 때문이다. 자녀는 일주일 중 6일은 방에 있고, 하루는 나가서 친구도 만나고, 놀기도 하지만 집에 있을 때는 아버지와 몇 마디 하는 것을 빼고는 엄마와는 말을 섞지 않았다. 부모는 아이가 이렇게 된 이유를 알 수 없다며 속상해하고 괴로워했다. 필자가 부모를 상담해 보니 원인은 아내의 ‘불합리한 훈육’에 있었다. 아내는 자녀에게 ‘어른인 부모 말에 ’무조건‘ 말대꾸해서는 안 된다’는 규칙을 만들어서 시행했다. 아이는 이런 어머니의 강압을 어린 시절에는 어쩔 수 없이 따랐지만(침묵) 청소년이 된 지금은 스스로 방 밖에 나오지 않는 ‘은둔형 외톨이’가 되어서 엄마의 불합리한 규칙(폭력)에 침묵으로 반항하는 것이다.

아내의 부모님은 시골에서 농사를 짓던 농부셨다. 부모님들이 자주 하던 말이, “어른이 말하면 들어야지”, “어디 말대꾸를 해”였다. 아내는 이런 부모님의 ‘불합리한 규칙’에 맞추면서 이른바 ‘착한 아이’, ‘순종적인 아이’로 성장했다. 결혼을 한 후, 자녀를 낳아 키우면서 자신이 경험했던 ‘불합리한 규칙’을 자녀에게 그대로 반복했다. “어른이 말하는데 어디 말대꾸야!” 이런 엄마의 훈육방식에 자녀는 반항심이 커져갔고, 회사 일에 바빠서 자녀 훈육은 뒷전이었던 남편의 ‘방조’하에 아이는 점점 자기를 꽁꽁 방어하는 은둔형 외톨이가 되어갔다.

이처럼 우리나라에서는 유교사상을 바탕으로 한 조건화된 가치가 사회저변에 퍼져있다. 이는 비교하고 비난하며 ‘욱’하는 분노폭발 문화를 확산시켰고, ‘침묵’과 ‘폭력’의 소통 방식으로 이어졌다. 안전감이 없는 ‘침묵’과 ‘폭력’은 대화가 아니다. 지속적인 ‘침묵’과 ‘폭력’은 스트레스를 쌓이게 하고, 행복은 내쫓으며 불행을 초대한다. 그렇다면 어떻게 의사소통하는 것이 ‘침묵’과 ‘폭력’에 머무르지 않고, 행복을 초대할 수 있을까? 대화가 답이다.

 

대화하는 데 있어서 ‘안전감’은 필수다

 

세 번째는 대화다. 대화는 쌓인 스트레스를 풀고, 인간관계를 원만하게 만들어 주는 유일한 소통 방식이다. 대화는 두 사람 이상이 음성언어나 비 음성 언어를 주고받으면서 연결감과 유대감을 발전시키는 의사소통이다.

필자가 전에 읽었던 대화훈련 가이드북에서는 대화를, ‘서로 싸우거나 다투지 않고 3문장 이상 주고받는 것‘이라 정의하기도 했다. 대화는 전지의 음극과 양극이 만나서 불이 켜지는 것처럼 환해지는 것이고, 시냇물이 막히지 않고 흘러 물고기들이 뛰어놀고 주변에 나무들이 잘 자라는 것처럼 생명이 넘치는 경험이다. 그런데 ‘침묵’과 ‘폭력’으로 의사소통하는 악순환에 빠져서 대화하지 못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안전감을 느끼지 못하기 때문이다.

앞의 의사소통에 관한 원 그림을 보면 대화는 가장 안쪽에 있는 작은 원에 있다. 필자는 이것을 ’대화의 성(城)‘이라 칭하겠다. 그 성의 주변에는 물이 있다. 중세시대 성을 보면 주변에 수로를 파서 적이 들어갈 수 없게 만든 것을 떠올리기 바란다. 이 성을 들어갈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은 성에서 다리를 내려주어야 한다. 그 다리를 건너야만 대화가 가능하다. 이 다리의 이름은 ’안전감‘이다. 왜 ’안전감‘이라고 하는 다리를 건너야만 대화의 성에 들어갈 수 있을까? 인간의 뇌는 세 부위로 구성되어 있다. 생존을 관장하는 파충 뇌, 감정을 주관하는 포유 뇌, 그리고 생각과 판단, 언어를 가능하게 만드는 이성 뇌다. 이중 파충 뇌와 포유 뇌는 동물 뇌로 하위 뇌이고 이성 뇌는 상위 뇌다. 대화는 상위 뇌(이성 뇌)의 전두엽과 대뇌피질이 하위 뇌(동물 뇌)의 기능을 관장하고 조율할 때만 가능하다. 하지만 안전감이 없으면 동물 뇌인 하위 뇌는 생존과 안전이 확보될 때까지 ‘싸우든지 도망치든지’반응에 주력하게 되는데, 이때 상위 뇌는 제대로 기능을 하지 못하므로 대화가 어렵기 때문이다(뇌의 구조와 기능에 대해서는 다음 장에서 자세하게 다룬다). 예를 들어 보자. 당신과 가족이 놀이동산에서 롤러코스터를 탄다. 안전벨트가 내려오지도 않았는데, 롤러코스터가 움직이기 시작한다. 당신과 옆에 있는 사람들의 얼굴은 사색이 된다. 롤러코스트가 홀로코스트(holocaust)가 될 위기다. 무엇이 흥분과 기대로 가득했던 순간을 공포와 경악의 도가니로 만들었는가? 작동하지 않은 안전벨트 때문이었다. 안전감을 느낄 때만 놀이나 대화에 전념하고 즐길 수 있다. 앞서 언급한 ‘은둔형 외톨이’가정을 다시 생각해 보자. 엄마는 권위적으로 불합리한 규칙을 앞세우고(폭력), 아빠는 방관(침묵)하는 가정에서 자녀는 안전감을 느끼기 어려웠고, 자신을 방어하는 과정에서 ‘은둔형 외톨이’로 성장했을 것이다. 자녀가 안전감을 느끼고 대화할 수 있게 부모가 어떻게 도울 수 있을까? 부모가 자녀에게 질문을 허용하고 자녀를 존중하는 태도로 답변하면서 안전하고 합리적으로 대화할 수 있는 기술이 필요하다.

 

[남동우 소장의 저서 '부모의 말 한마디 행동 하나가 아이를 바꾼다'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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